권두언

작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윤영근(소설가)

검지 정숙자 2021. 12. 30. 16:34

<권두언>

 

    작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윤영근/ 소설가

 

 

  한 작가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

  중학교 시절 어렴풋이 장차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간직한 이후 70년 세월을 늘 글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고조부 때부터 4대를 이어온 가업인 한의원을 운영하며 환자들을 진료한 세월 또한 60여 년 세월이니, 평생을 글쓰기와 한의사로 살아온 셈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사랑은 말 그대로 소리꾼의 사랑방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임방울이며 송만갑이며 이화중선 같은 소리꾼들이 찾아와 며칠씩 머물다 갔다. 소리꾼이 오면 우리 집 마당에서는 자연스레 소리판이 벌어졌다. 어머니와 마루 끝에 나란히 앉아 들었던 명창들의 소리는 내게 <쑥대머리> 한 대목을 흥얼거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내 소설 「동편제」며 「각설이의 노래」며 「가왕 송흥록」이며 「이화중선」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목청을 틔우려고 피를 토하며 독공을 했던 얘기며, 창극단 공연을 다니다가 불온한 대목을 불렀다 하여 경찰서에 끌려가 일본 순사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얘기들은 그대로 내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가끔 내가 남원에서 태어난 것은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남원은 춘향의 고장이며 동편제의 고장이다. 「춘향전」과 「흥부전」의 고장이고 「최척전」과 「홍도전」 그리고 「만복사저포기」를 탄생시킨 고전문학의 고장이다. 지금은 걸쭉한 소리 한 대목 내놓을 수 있는 주모가 있는 주막이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 남원에서는 어느 골목을 지나가건 귀에 익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철학서적도 여러 권 낸 제법 이름이 알려진 철학교수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칸트를 연구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 교수가 독일 유학을 가서 택시를 타게 되었는데 무심코 칸트 얘기를 꺼냈다가 그 택시 기사가 박사학위를 받은 자신보다 칸트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알고 맥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칸트의 나라에서는 택시 기사까지도 칸트 박사인 셈이다. 우스갯소리로 '여수 가서 돈 자랑하지 말고 보성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디에나 숨은 고수는 있게 마련이다. 

  남원이 그런 고장이다. 젊은이들이야 동편제가 어떤 가락이고 송흥록이 왜 가왕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이 지긋한 남원 사람이라면 <춘향가>나 <흥보가> 한 대목은 흥얼거릴 줄 알고 젓가락 장단일망정 고수 흉내를 낼 줄 안다. 송흥록이 <귀곡성>을 부르면 귀신이 화답했다는 일화 하나쯤은 꺼내놓을 줄 안다.

  작가에게 탯자리는 무엇일까? 소설가로 이름을 올리고 나서 작가로서 고향에 보은하는 길이 무엇일까를 참 많이 고민했다.

  무릇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고향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작가에게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화가와 음악가에게는 예술적 영감을 준다. 고향의 하늘, 고향의 산, 고향의 강, 고향의 나무, 고향의 꽃이 모두 예술가를 키우는 감성의 보물창고이다. 따라서 모든 예술가는 고향에 은혜 갚음을 해야 한다.

  화가는 고향의 산천을 그려내야 하고 음악가는 고향의 산천을 노래해야 하며 작가는 고향의 산, 들, 강,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 한다. 그것이 고향에 보은하는 길이다.

  한때 지리산 골짝골짝을 틈만 나면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소리꾼들이 독공 장소로 삼았던 폭포를 주로 찾았으나 나중에는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을 찾아갔다. 남원에서 가까운 육모정의 용소는 헤일 수 없을 만큼 내려다 보았다. 용소는 조선 근세 8명창 가운데 하나인 권삼득 명창이 독공을 한 곳이다. 양반가에서 태어난 권삼득이 소리공부를 하는 것이 못마땅한 집안에서 멍석에 말아 죽이려고 하자 '죽기 전에 소리 한 대목만 부르게 해달라'고 애원하여 소리를 했는데 권삼득의 소리에 감동한 집안 사람 중의 하나가 '저 놈 재주가 죽이기는 아깝다'면서 파문하여 내쫓았다. 

  콩 한 말을 짊어지고 남원 육모정 용소에 온 권삼득은 소리 한 대목을 부를 때마다 콩 한 알을 용소에 던져 넣었다. 그렇게 콩 한 말을 다 던지고서야 지리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얻어 명창이 되었다.

  지리산 골짝골짝에는 폭포도 많고 그 폭포마다 소리꾼의 그런 일화들이 널려 있다. 소리꾼을 찾아 폭포 앞에 서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처음에는 폭포소리만 들리다가 어느 순간 물 떨어지는 소리는 사라지고 소리꾼의 소리 한 대목이 내 귀청을 때린다. 비로소 내 귀가 열리는 순간이다. 그렇게 소리꾼의 소리를 만나고 나면 소설을 신명나게 써내려갈 수 있었다. 그런 소리꾼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지리산은 내게 참 고마운 산이다.

  동편제의 가락을 '지리산 천왕봉에서 집채만한 바위가 굴러 내려오는 소리'로 비유하고 있다. 어쩌면 남원이 동편제의 본향이 된 것도 지리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의 우람한 산세가, 골짜기마다 숨어 있는 크고 작은 폭포가 수많은 명칭들을 길러 냈는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절차탁마하여 명장으로 우뚝 선 소리꾼들은 또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지리산은 내게 얼마나 고마운 산인가.

  남원의 동편제, 동편제를 부른 남원 출신의 소리꾼들,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명창을 길러낸 지리산은 내 소설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작은 도시 남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은 열녀춘향의 고양이기 때문이다. 괴테나 모차르트의 생가가 관광지가 된 것은 그들이 남긴 빛나는 업적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을 남원의 산하로 삼은 것은 남원 출신 작가로 고향에 보은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50년 세월을 바쳐 남원 출신 항일운동가들의 자료를 수집하여 『남원항일사』를 완성해낸 것이나, 남원의 5대 고전 가운데 「흥부전」과 「최척전」과 「홍도전」을 현대소설로 재집필한 것도 고향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믿었는데, 나중에 곰곰이 되새겨 보니 그것조차도 내가 고향에 은혜를 입는 일이었다.

  모든 예술가들에게 고향은 화수분 같은 곳이다. 남원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내게 소설 소재를 제공해 준다. 그래서 내가 남원에서 태어난 것이 고맙고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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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1-11월(633)호 <권두언> 전문

  * 윤영근/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