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
박덕규
멀리서 울리던 기적소리가 어느새 가까워졌다. 나는 철교 위를 걷고 있었다. 방금 전 기차 한 대가 지나간 뒤라 방심하고 한 행동이었다. 메마른 하천 바닥으로 곧장 뛰어 내리는 건 아예 생각도 못했다.
그 기차에 그대로 받혀 죽어버렸어야 하는 건데, 라는 생각이 그 뒤 우울할 때마다 찾아들었다. 기적소리 하나 없는 철기시대를 살게 될 줄은 공상으로도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이 어느덧 다 지나가 버렸다.
그때 철교위에 나 말고 내 친구 하나가 앞서가고 있었다. 그 친구가 용케 교각 상판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발견하고 그리로 몸을 옮겼고 나도 곧 뒤따랐다. 내 뒤를 스쳐가던 서늘한 느낌이 오래오래 등에 남아 있었다.
그게 어느 봄날 일요일의 일이었다. 이 계절에는 간간이 아득히 먼 데서 기적소리가 울려오고 노란 아지랑이가 눈에 어른거리곤 한다. 간밤에 핏물이 바닥에서 고여오는 꿈을 꾸다가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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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문학에스프리』 2020-겨울(35)호 <신작 시>에서
* 박덕규/ 1980년 『시운동』으로 등단, 시집 『아름다운 사냥』 『날 두고 가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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