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권현형_궁극은 투명...(발췌)/ 칼데아인의 밤 : 임동확

검지 정숙자 2021. 1. 17. 17:23

 

    칼데아인의 밤

 

    임동확

 

 

  금세 무성해진 마편초馬鞭草를 찾아 제각기 흩어져

  떠도는 부족들을 떠올리며 밤 별들의 운행을 6진법으로

  너끈히 계산해내기도 했던 칼데아인들은,

 

  아마도 인류 최초로 천사의 별들에게 이름을 붙여 줬지

  만 가축을 몰고 가던 늑대에겐 결코 별자리를 주지 않은

  곳으로 보아 조금은 옹졸하기도 했던 칼데아인들은,

 

  그러나 먼 훗날 저들의 후손인 한 청년이 마른 흙담벽

  아래 검은 복면의 IS 대원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걸 미처

  몰랐을 거야.

 

  놀랍게도 일찍이 일식과 월식을 예측했으며 밤낮의 길

  이가 같아지는 춘분점을 기점으로 2등분하여 별자리를 배

  치하기도 했던 기원전 3천 년 전의 유목 민족 칼데아인들은,

 

  그러나 아주 먼 훗날 그들의 머리 위에 황홀하게 빛나

  던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아래 끔찍한 참수형이 벌어질

 

  것이라곤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을 거야.

      -전문, 『누군가 나를 부를 때』

 

 

  ▶궁극은 투명, 빗방울처럼 소용돌이처럼(발췌)_ 권현형/ 시인 

  시인은 별의 기원을 따라 머나먼 바빌로니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수천 년 경 바빌로니아의 지역에 살던 유목민인 칼데아인들의 바로 그 마음처럼 별에서 마편초 냄새를 맡고 밤새 우주를 떠돈다. 별의 시간을 계산할 수 있었던 고대인들의 6진법도 인간의 시간은 계산할 수 없음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기원전 칼데아인들처럼 별빛을 따라 하노의의 밤을 떠돌다가 속이 보이지 않는 텐트형 포장마차의 문을 밀고 들어가니 연기가 자욱했다. 학교 대신 하노이로 돈을 벌러 온 산간 지방 소년들이 고된 노동을 끝내고 싸구려 술에 잎담배를 안주 삼아 빨아대고 있었다. 깡통 속에 넣어 말아 피우는 잎담배의 연기로 허기를 채우는 것 같았다. 소년들은 동과 달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먹을만한 안주를 시켜주고 나옴으로써 그들의 간절한 거래에 응해주지 못했다.

  6진법으로도 뼈대만 앙상한 건물에서 철근을 이불 삼아 덮고 자는 동시대 이국의 소년들을 여행 중에 맞닥뜨리게 될 일을 미리 헤아리지는 못한다. 프랑스와 미국과 중국과 일본의 잇달은 점령에도 무릎을 꿇지 않고 자존심을 지켰던 베트남도 고공의 도시화, 자본화를 이뤄내면서 빈곤층 소년들의 허기와 추위를 지켜주지는 못했다. '한, 아세안 시인 문학 축전'에서 만났던 베트남 시인 응웬 꽝 티에우(Nguyen Quang Thieu)의 말처럼 "사람의 죄악을 해방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저마다 마음속에 꽃을 피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꽃이 시라면 하노이 시인들이나 한국의 시인들이나 극빈의 생 앞에서는 언제까지나 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문학은 우리의 인격처럼 불완전하다. (p. 시 205-206/ 론 206-207)

 

   ----------------

  * 계간 『시와사람』 2020-겨울호 <해시태그 시인론: #임동확 시인을 태그하다> 에서

  * 임동확/ 1959년 전남 광산 출생, 시집 『매장시편』으로 등단, 등단 후 시집 『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등,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생성의 시학』, 산문집 『들키고 싶은 비밀』, 시 해설집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버마 현대시인의 시 번역시집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등

  * 권현형/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밥이나 먹자, 꽃아』 『포옹의 방식』 등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죄/ 신미나  (0) 2021.01.18
흰 강물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정윤천  (0) 2021.01.17
러시안룰렛*/ 조승래  (0) 2021.01.17
얼음과 달/ 박성현  (0) 2021.01.17
계단은 살아있다/ 허승호  (0) 2021.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