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얼음과 달/ 박성현

검지 정숙자 2021. 1. 17. 00:41

 

    얼음과 달

 

    박성현

 

 

  사방에서 문이 열리고 닫혔다 문을 열고 닫으면 다른 세계였다 어떤 문은 신전으로 향했고 유령 도시는 마지막 문 너머였다 처음에는 발목을 자르는 소리였지 그 소리가 심장을 움켜쥔 것이니 그림자조차 너무 무거워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림자를 접어 주머니에 넣을까 우리는 항상 죽은 자들처럼 생활을 기념했어 그때 발목 자르는 소리를 다시 들었다 어깨까지 올라와서는 희고 따뜻한 재를 타고 멀리 가는 것이었다 잠들기 전에 꿈을 꾸었다고 속삭였다 몇 권의 희귀한 문헌과 사진첩을 꺼냈다 저 얼굴에 박힌 수많은 문들을 하나하나 짚었다 문을 열고 구름과 저녁과 붉은 새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문을 하나씩 여는 거야 유리문에서는 폭설이 내렸고 602호라 쓰인 문에서는 옛날과 거울이 산산조각 나면서 불타올랐다 문을 여는 것은 눈을 뜨는 방식이다. 비명 소리가 난 곳은 연필로 정교하게 그려진 문이었는데, 아직 채색이 안 된 뮌헨의 옛 시가지에서 속초의 해안을 관통했다 얼음과 달의 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동물원이었고 인도양 끝에 방치된 그림자 섬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전문, P-193 ) 

 

  

    ▣ 나의 시론> 부분 셋:  두꺼운 수면 양말을 신어야 겨우 잠들 때가 많다. 특히 찬 이슬이 내리는 10월의 한로 무렵부터 발가락에 얼음도 같이 서리는 까닭에, 나는 발가락을 감싸고 보호할 일종의 외투를 덧씌워야 한다. 어디서 찾아오는지 모르지만, 얼음은 상당히 오래 내 곁에서 서성거리다 이때다 싶게 스며든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못할 때는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 오래 담그거나,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거나, 근처 편의점에 갈 때도 두 겹으로 양말을 신었다. 귀신 본 듯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 어느 정도 습관이 되기까지, 그게 증후군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내가 한 일이라곤 그 정도가 다였다. 아마, 가벼운 레이노를 앓아본 사람은 이 처치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P. 198)   

 

  하지만 수면양말을 신어도 따뜻한 물에 반신을 담가도 얼음은 완벽히 차단되지 않는다. 마치 아스팔트에 흡착된 손바닥만 한 검정 비닐봉지 같은 이물이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다. 얼음이란 놈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도사린 것일지 모르겠다. 그 증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무렵처럼 그것은 내가 감내해야 하는, '살아감'이란 실존의 한 부분이고 내 생활-세계이며, 분리 불가능한 그림자임을 다시 깨달았다. 첫 시집을 내고 얻은 병이 이제는 내 삶인 것처럼 (나는 그것을 병에 세 들어 산다고 표현한다). 얼음도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자라고, 나와 같은 집에 살며 나와 같은 식욕을 가진 '또 다른 나'일지 모른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얼음이라는 철저한 이물들과 함께 사는 시간들과 동일하지 않을까. 여기에 주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른 넘어 찾아온 얼음이 오히려 주인행세를 한다 해도 불편할 필요는 없겠다. 왜내하면 얼음-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P. 199)

 

  얼음이 시작될 때면 발바닥이 반으로 쪼개진다. 기분 나쁜 통증도 오고 감각도 이상하게 뒤틀린다. 처음에는 잔인하도록 싫었지만, 지금은 이것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존이란 살아있음의 절절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내 문장들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그 과묵한 얼음과 침묵의 미세한 움직임을 쫓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진정한 음악이 악보 안에 있다면(글랜 굴드), 나의 시는 얼음을 받아들이는 내 의지에 있다. 나와 시는 얼음과 같이 산다. 그것이 내가 실존하는 방식이자 지금까지의 유일한 시론이다. (P.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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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시와사람』 2020-겨울호 <시와사람 초대석/ 신작시/ 나의 시론> 에서

   * 박성현/ 200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