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김점용
가난도 직업이라서 난 가난해도 되는데, 같이 가난해질 수 없다는 아내의 말이 늘 걸렸지만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연립주택 반지하방을 얻었다 첫날부터 문제였다 천장에 물이 샌다고요 물이 정말이라니까요 네 네 아 여행 간다고 며칠 비우긴 했죠 도대체 어떤 여자가 와서 울고 갑니까 바다가 아니고요 바닥 바닥도 몰라요? 그렇죠 지금 천장이 시꺼멓게 썩어들어오고 있다고요 아 정말 미치겠네 눈물이 아니라니깐요 안 뜯어봐도 뻔해요 위층에 미친 여자가 살면 그렇다고 진작에 말씀을 하셨어야죠 계약할 땐 가만히 계시다가 아 제발 제 말을 좀 끝까지 듣고 아니 제가 언제 그랬어요 계약대로 밥은 안 해먹고 잠만 잤어요 물이 새는데 경찰을 왜 불러요 진짜 어이상실이네 물이 새는 게 분명해요 겉으론 멀쩡해도 밤중엔 소리까지 똑똑히 그러니까 그게 사람 죽은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저야 손 하나 까딱 안 했죠 그럼요 당연히 물을 잠그고 갔었고 아 글쎄 그 여자가 누군지 몰라요 모른다구요 정말 암튼 전 아 정말 제 말 좀 끝까지 들어보세요 제가 누군지 모른다고요 아니 이건 주인아저씨 핸드폰 아닌가요? 맞죠 맞잖아요 아무튼 전 나갈 겁니다 나가야겠어요 이러다가 저도 미쳐버리겠어요 돌아버리겠다고요 천장에 점이라도 비치는 날엔 나가게 해주세요 네? 나가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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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와사람』 2020-겨울(98)호 <신작시> 에서
* 김점용/ 1997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메롱메롱 은주』, 평론집 『슬픔을 긍정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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