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 사람들이 나를느끼지 않고 이해하려 하므로 그들이 두렵다*
안민
나는 질주한다,
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원래 숨을 헐떡인다. 느리게 걷지 않는 것은 보이는 전부가 다 저장되어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다. 나는 무엇도 낳지 않았고
수억 년 전에서 왔다. 아버지가 나이고 내가 아들이다.
연인이었고 음악이었고 애증이었다. 유령이었고 고독한 손결이었고 결국엔 성난 눈眼이었다.
잎사귀가 추락해버린 나무, 쓰러진 채 깜박이는 가로등, 펄럭이다 흐느끼는 간판, 브레이커가 고장 난 사랑, 피의 혁명, 그 무엇도 나와는 무관하다. 나는 누구의 울음도 원하지 않았다. 단지 깨어져 버릴 관능을 동경했을 뿐
그대는 내가 해석되지 않고 나도 내가 해석되지 않고
단지 멈추지 않고 주행토록 왜곡되었을 뿐
그 무엇과도 공범은 아니다.
물론 역주행은 있었겠지. 허공을 향해서도
수천 개의 뼈가 덜거덕거린다. 스산한 신음을 뿌리며
고백건대 어둠과 침묵의 덩어리인 내가 스스로 울음을 흘린 적 없다. 진훍이 목구멍까지 밀치며 들어오곤 했다. 나무와 강물과 바다와 바위와 모래가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들이쳐
나인 듯 울었다.
국경과 국경을 지나면서 혹은 해변과 산정을 지나면서
몸 안의 슬픔이 너무 많이 사냥당했다
-전문, 『현대시』 2020-11월호
*니진스키
▶소리 내어 울었지, 아무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아서(발췌)_ 임지훈/ 문학평론가
안민의 시는 위대한 무용가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독백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위적이고 독창적인 예술적 실험을 반복하여 모던 발레의 틀을 마련한 니진스키는 한편으로 그의 후원자인 디아길레프에 종속된 인간이기도 하였다. 균형과 비례를 중시하는 고전적 발레의 틀을 깨고, 자유롭게 신체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안무를 창안해낸 가장 자유로운 무용수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모든 삶이 한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말았다는 비극적 삶에 대해, 안민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비극으로 전환시킨다. 여기에서 한 명의 인간은 개인으로써 특수한 존재이지만 무수히 반복되는 역사라는 긴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는 자유를 갈구하면서도 영원히 그에 가닿을 수 없는 실패자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이 자유를 갈구하지만, 끝내 자유의 완전한 쟁취에 실패한다는 점에서 여기에서 가시화되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 그 자체다. "나는 질주한다,/ 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와 "느리게 걷지 않는 것은 보이는 전부가 다 저장되어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다"의 사이에서 진동하는 역사적 주체의 모습은 그러한 유한성의 체감을 비극적으로 극화시키는 안민 특유의 발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뼈와 어둠과 울음과 모래가 흩날리는 이 세계 속에서 화자의 감정들은 사냥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이는 곧 그가 인용한 니진스키의 독백과 상응하며 인간 존재의 어쩔 수 없는 한계와 그것을 절감하는 주체의 곤궁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발화들의 주체가 '바람'이라는, 유동하고 비고정적인 객체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안민의 시적 화자는 흐름을 멈추지 않고 그 결과로써 실패를 반복하지만, 그 반복되는 실패들을 통해 모종의 감각들을 누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불온한 낌새를 풍기기도 한다. (p. 시 208-209/ 론 22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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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0-12월호 <현대시 작품상 이달의 추천작/ 작품론> 에서
* 안민/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게헨나』 『아난타』
* 임지훈/ 문학평론가,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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