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전해수_나의 위태로운 정글...(발췌)/ 하이에나의 시 : 유미애

검지 정숙자 2021. 1. 14. 03:18

 

    하이에나의 시

 

    유미애

 

 

  그림자를 우물거리며 울어본 적 있나요

 

  자꾸 수염이 자라요 생각들이 우굴거려요 몬탈레와 썩은 고기가 있는 비탈, 작은 나무 아래가 나의 터

 

  죽음의 냄새를 쫓는 두 눈의 광기와 지독한 비린내가 물려받은 내 이름인데 왜 아침이면 구렁 속의 묘비명을 꺼내어 닦는 걸까요

 

  설피를 입에 물고 잠든 늙은 수컷을 봤어요 홑이불 같은 노을이 산꼭대기를 감싸고 끊어진 눈물 자국이 마지막 구절처럼 빛났죠

 

  나무에 기대어 있었어요 어린 발톱들이 그 간결한 묘사를 다 베낄 때까지

 

  내 수염은 왜 자랄수록 구부러질까요 눈이 녹으면 돌멩이와 꽃이 날아들던 그의 자리는 또 다른 나무가 채울 텐데 길고 어두운 페이지가 펼쳐지면, 나는 피 묻은 연필을 꺼내어 가파른 밤을 달려야 할 텐데

 

  누가 이 시의 결말을 알겠어요? 내 울음소리가 비탈을 돌며 거친 발자국을 찍는 동안에도 나는, 나무가 꽃으로 덮이는 꿈이나 꿀 텐데요 꽃들이 밥그릇을 엎고 책을 찢으며 캄캄한 눈동자 너머로 날아가기만을 바라는

    -전문-

 

 

  나의 위태로운 정글 혹은 고독한 영혼의 시(발췌)_ 전해수/ 문학평론가 

  늙은 수컷 "하이에나"에 투영된 시인의 고독한 영혼은 썩은 고기가 있는 비탈 아래에 터를 마련하고, 아침이면 구렁 속의 묘비명을 꺼내 닦으며,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마치 한때는 정글을 누빈 용맹스런 하이에나였으나 지금은 도저한 죽음의 냄새를 쫓는 광기와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는 늙은 수컷이 된 양 숲의 그림자만 좇으며 울음소리를 내는 하이에나가 바로 '나'이자 '시의 결말'이라는 듯이, 시인은 눈물자국 선연한 회한悔恨의 감정을 시에 쏟아붓는다. 왜 "나는" "나무가 꽃으로 덮이는 꿈이나 꾸"며 "밥그릇을 엎고" "책을 찢으며" "캄캄한 눈동자 너머"를 응시하는가. 왜 "나는" "피 묻은 연필을 꺼내어 가파른 밤"을 여전히 달려가고 싶은 어제의 "하이에나"인가. 유미애 시인은 "어린 발톱들이 간결한 묘사를 베끼는" 하이에나의 시가(혹은 '하이에나'다운 시가), 그리운 것은 아닐까. (p. 시 152-153/ 론 161-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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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0-12월(372)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신작시/ 작품론>에서  

  * 유미애/ 2004년 『시인세계』로 등단,  『손톱』 『분홍 당나귀』   

  * 전해수/ 2005년 『문학선』으로 평론 부문 등단, 평론집 『목어와 낙타』 『비평의 시그널』 『메타모포시스 시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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