꿰매다
나희덕
무언가 열심히 꿰맨다
바닥에는
방금 실을 끊어낸 실패가 놓여 있고
실패에는 실이 남아 있다
바늘이
천과 천 사이를 드나드는 동안
실패에서 풀려난 실은 한 땀 한 땀 길을 낸다
한 걸음 한 걸음 찢어진 길을 꿰매듯이
튿어진 바짓단이든 구멍 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만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 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무언가 꿰고 꿰매는 동안에는
다정한 이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실패를 갖고 놀던 아이*는 보았을까
실을 꿰는 엄마를
무언가 열심히 꿰매는 엄마를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마음까지 다 꿰매주었을까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fort"와 "da" 사이에서
엄마의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 사이에서
오늘의 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실패에는 실이 아직 남아 있고
무언가 꿰매는 손등에는 고요가 내려와 반짝이는데
-전문-
* 프로이트가 말한 'fort-da'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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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마詩魔』 제6호. 2020. 12. <시마詩魔-겨울 신작시> 에서
* 나희덕/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파일명 서정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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