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벽속의 남자/ 조혜정

검지 정숙자 2021. 1. 11. 01:29

 

    벽 속의 남자

 

    조혜정

 

 

  남자는 얼음같이 굳어버린 벽 속에 있었다

  아침이 되어도 걸어 나오고 싶지 않았다

  벽은 성별과 추억을 구분하지 않고

  생몰연대를 제 몸에 기록한 후 스스로 삼켜버렸다

 

  발목 하나가 겨우 빠져나온 영혼이

  남자의 눈꺼풀을 붙잡고 있을 때

  나야 나, 나, 기억하지. 벽 속에 갇히기 위해

  간신히 이어지는 나야 나, 사랑해들을

 

  어느 날 죽음이 죽는다

  벽 속의 남자는

  얼음같이 굳어버린 벽 속에 잠들어 있다가

  죽음을 놓치고

  그때부터 벽 속이 무덤처럼 편안했다

 

  남자는 얼음같이 굳어버린 벽 속에서

  저녁이 되어도 걸어 나오고 싶지 않았다

  발목 하나가 겨우 빠져나온 영혼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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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정신』 2020-겨울(74)호 <신작시> 에서

  * 조혜정/ 2007년 『시와반시』로 & 2008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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