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남자
조혜정
남자는 얼음같이 굳어버린 벽 속에 있었다
아침이 되어도 걸어 나오고 싶지 않았다
벽은 성별과 추억을 구분하지 않고
생몰연대를 제 몸에 기록한 후 스스로 삼켜버렸다
발목 하나가 겨우 빠져나온 영혼이
남자의 눈꺼풀을 붙잡고 있을 때
나야 나, 나, 기억하지. 벽 속에 갇히기 위해
간신히 이어지는 나야 나, 사랑해들을
어느 날 죽음이 죽는다
벽 속의 남자는
얼음같이 굳어버린 벽 속에 잠들어 있다가
죽음을 놓치고
그때부터 벽 속이 무덤처럼 편안했다
남자는 얼음같이 굳어버린 벽 속에서
저녁이 되어도 걸어 나오고 싶지 않았다
발목 하나가 겨우 빠져나온 영혼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
* 『시와정신』 2020-겨울(74)호 <신작시> 에서
* 조혜정/ 2007년 『시와반시』로 & 2008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꿰매다/ 나희덕 (0) | 2021.01.12 |
|---|---|
| 흩어진 새/ 박해람 (0) | 2021.01.11 |
| 영화가 사람을 보다/ 동시영 (0) | 2021.01.11 |
| ㄹ로 묶기/ 강주 (0) | 2021.01.10 |
| 저 별/ 이광석 (0) | 2021.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