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동안-대화 1
남진우
자정.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아버진 죽었는데 왜 아직도 살아서 바스락거리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들아, 나는 죽어가고 있을 뿐 아직 죽은 것은 아니란다. 살아 있는 한 나는 계속 바스락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구나. 아들이 다시 물었다. 아버지, 그렇게 바스락거리는 한 아버진 영원히 죽지 못할 거예요. 죽기 위해서라도 그 바스락거림을 그만두어야 해요. 아버지가 다시 대답했다. 이 바스락거림은 내가 죽어간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란다. 이렇게 바스락거리다 보면 언젠가 나는 완전히 죽게 될 거다. 아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진 이미 죽었다니까요. 그런데도 계속해서 바스락거리는 것은 죽은 자신에 대한 모독이에요. 아버지가 시무룩한 어조로 말했다. 글쎄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란다. 이렇게 바스락거려지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아들이 소리쳤다. 바스락바스락 당장 그 바스락거리는 것을 그만두세요. 아직도 살아 있다니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그 바스락거리는 것 지켜보다가 내가 죽을 지경이에요. 아버지가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아니 그럼 너는 네가 아직 살아 있다고 믿는 게냐. 너 또한 기껏 바스락거리고 있을 뿐이지 않느냐
-전문-
▶ 남진우의 산문시집에 대하여(발췌)_ 이숭원/ 문학평론가
이 시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죽었으니 더 이상 바스락거리지 말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에 있고 이 바스락거림이 죽어가는 징표라고 답한다. 사지가 번듯하게 움직이는 것은 산 것이고 사지가 오그라들어 꼼짝 못 하는 것은 죽은 것이다. 그런데 삶과 죽음의 사이에 바스락거림이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다. 죽어서도 산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스락거림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가끔 꿈에 나타나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제로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라 심리적 작용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버지가 호통치는 꿈을 꾼 날은 하루 종일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헤맨 꿈을 꾼 날은 어디서 불길한 전갈이 오지 않나 걱정한다. 죽은 존재가 삶 곁에 머물며 기묘한 방식으로 바스락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의 끝부분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너는 네가 아직 살아 있다고 믿는 게냐. 너 또한 기껏 바스락거리고 있을 뿐이지 않느냐"가 그것이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다. 거대한 우주의 시야에서 보면 우리가 산다는 것은 벌레같이 작은 몸을 바스락거리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바스락거림의 과정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제대로 알아야 삶의 의미가 확연해진다. (p. 시 143-144/ 론 145-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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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20-겨울호 <heavy jazz>에서
*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저서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목월과의 만남』 『미당과의 만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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