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음차(音借)/ 장우덕

검지 정숙자 2021. 1. 5. 21:49

 

    음차音借

 

    장우덕

 

 

  흰 종이 위로 개미가 기어간다

  개미의 족적을 잇다 보면 문장이 완성될까

 

  어제는 종이와 펜을 찾을 수 없어서

  손톱으로 손바닥에 凶 자를 급히 여러 번 썼다

 

  최초의 문구류는 뼈였다

  거북이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문자를 새겨

  길흉화복을 점쳤다고 한다

 

  쓴다는 것이 성스럽고 상스러워

  어젯밤 시켜 먹은 치킨을 치우며 나는 울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게 된 것을 분류하며

  뼈다귀를 핥는 것처럼 너의 글을 읽었다

 

  나는 개미가 기어간 흔적을 옮겨 경전을 엮는 중이다

  아직도 음식물 쓰레기의 정체성은 모호하고

  나는 여러 번 주먹을 쥐었다 편다

 

  획과 획을 교차할 때마다 사람을 죽이는 기분이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서명을 가지고 있다

  따뜻했던 너를 적으로 기록한다

 

 

   -----------------------

  * 『계간 파란』 2020-겨울(19)호 <poem> 에서

  * 장우덕/ 2018년 『서정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