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차音借
장우덕
흰 종이 위로 개미가 기어간다
개미의 족적을 잇다 보면 문장이 완성될까
어제는 종이와 펜을 찾을 수 없어서
손톱으로 손바닥에 凶 자를 급히 여러 번 썼다
최초의 문구류는 뼈였다
거북이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문자를 새겨
길흉화복을 점쳤다고 한다
쓴다는 것이 성스럽고 상스러워
어젯밤 시켜 먹은 치킨을 치우며 나는 울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게 된 것을 분류하며
뼈다귀를 핥는 것처럼 너의 글을 읽었다
나는 개미가 기어간 흔적을 옮겨 경전을 엮는 중이다
아직도 음식물 쓰레기의 정체성은 모호하고
나는 여러 번 주먹을 쥐었다 편다
획과 획을 교차할 때마다 사람을 죽이는 기분이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서명을 가지고 있다
따뜻했던 너를 적으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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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20-겨울(19)호 <poem> 에서
* 장우덕/ 2018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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