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처럼
차유오
기억을 잃어버린 할머니는 죽은 엄마의 옷을 마네킹에게 입힌다.
그렇게 하면 엄마 편하게 못 가요
못 간다는 말은 할머니를 웃게 만든다. 자세히 보면 우는 얼굴에 가까웠지만. 웃는 얼굴로 할머니를 기억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반복되는 웃음소리를 듣는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하려는 말을 마네킹에게 한다. 살아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서. 대답이 없어서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다.
마네킹은 옷을 입은 것만으로 할 일을 마쳤다고 믿는 눈치다. 물감으로 만든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할머니는 모른 척하고 있다. 정말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죽은 엄마는 마네킹 속에 있을까. 그렇다면 엄마는 한 번 더 갇혀 버리는 건가. 딱딱하게 굳어 있던 엄마의 몸을 떠올린다. 내가 잊어버린 순간까지 손은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가 마네킹을 힘차게 껴안자 마네킹의 얼굴이 떨어진다. 힘 같은 건 누구에게도 없는 것처럼. 바닥에는 힘없는 기억들이 떨어져 있다. 밟고 나아가야 하는.
떨어진 마네킹의 얼굴을 보며 할머니는 울기 시작한다.
뭐가 그렇게 슬퍼요?
마네킹 얼굴까지 슬퍼 보이게
떨어진 얼굴을 붙여 놓는다. 원래대로 돌아올 것처럼. 엄마의 옷 냄새를 맡는다. 맡으면 맡을수록 어지러워지는. 엄마는 금이 간 마네킹처럼 흔적만 남아 있다.
그 흔적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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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20-겨울(19)호 <poem> 에서
* 차유오/ ⟪문화일보⟫로 시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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