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고택/ 조정인

검지 정숙자 2021. 1. 3. 02:43

 

 

    고택

 

    조정인

 

 

  M의 고택에서 시낭송회가 있던 날, 낭송이 끝나고 사람들은 고방에서 나온 음식을 접시에 덜었다. 네다섯씩 모여 담소를 나눴다. 나는 무리에서 떠나 뒤란으로 갔다. 뒤란에 사백 년 된 우물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직경이 3m는 돼 보이는 우물은 나무뚜껑으로 덮여있었다. 뚜껑을 밀고 우물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물이 괴어 있었다. 과거인 동시에 현재이며 미래인 심연. 저것은 땅의 눈동자일까? 뚜껑을 닫은 나는 서둘러 뒤란을 빠져나왔다. 알 수 없는 한기가 등줄기에 끼쳤다. 안마당엔 여전히 사람들로 왁자했다. 그때였다. 사람들 발아래를 미처 한 뼘 높이가 채 안 되는 납작한 우물들이 빙글빙글 흘러다녔다. A의 왼발이 한 우물의 가장자리에 걸쳐졌다.   발아래를 조심하세요. 나는 A를 밀쳤다.   네? A가 의아해했다. 사람들은 우물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아니, 모두가 우물을 보는 건 아니었다. 발아래의 심연 혹은 낭떠러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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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ITION 포지션』 2020-겨울호 <POSITION 4/ 신작시> 에서   

   * 조정인/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사과 얼마예요』 『장미의 내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