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목판에의 편애(발췌)
송재학
내가 한때 경험했던 티베트의 염불통인 마니차는 둥근 원형통이다. 측면에 만트라가 새겨져 있고 안에 경문이 빼곡하다. 마치 영혼에 대한 설명을 압축시킨 듯한 마니차를 한번 돌리면 경을 한번 읽은 것으로 셈한다고 되어 있다. 경문을 읽지 못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불교에 대한 의지이다. 하지만 나는 금방 알아차렸다. 누군가 마니차를 한번 돌린다는 것은, 같은 마니차를 돌렸던 사람들이 경험한 모든 경문과 같은 기억을 한다는 것. 즉 같은 마니차를 거쳐 간 모든 사람들의 경문에 대한 기억을 같이 공유한다는 점이다. 문득 그 사실을 깨닫자, 두려움도 생겼다. 누군가의 경문뿐만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죄의식도 공유되리라. (p. 90)
티베트의 수행 방법 중에 툼모(G-Tummo) 명상이 있다. 여섯 가지 수행은 '툼모 · 규뢰 · 미람 · 외세 · 바르도 · 포와'의 단계를 가진다. 라마승의 승복은 어깨가 거의 드러난다. 날씨가 추운 티베트에서 라마승들이 추위를 견디는 것은 툼모 수행 덕분이다. 툼모 명상 후에 손발의 체온부터 올라가는 게 서구의 호사가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툼모는 복식호흡이다. "단전에서 불을 일으켜 중맥 안으로 기운을 흘러 들어가게 하는 호흡"이다. 내면의 에너지를 통해 라마승들은 38.3도 이상으로 체온을 상승시킨다. 오랜 수련을 통해 라마승들은 손가락 온도가 5도, 발가락은 7도 정도는 쉽게 올린다. 일체유심조이니까 가능한 마음의 수행이다. 툼모는 '사나운 여인'이라는 어원을 가진다. 번뇌를 불태우기 위해 치열한 수행에 필요한 사나움과 대지모신의 어머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p. 92)
-------------------
* 『시인동네』 2020-7월호 <사물의 생각>에서
* 송재학/ 1986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간체를 얻다』 『날짜들』 『슬프다 풀 끗혜 이슬』 외 다수
'한 줄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세기에 쓰는 우리의 상형문자(발췌)/ 정복선 (0) | 2020.07.13 |
---|---|
모든 것들을 모든 감각과 사유로 표현하는 모든 방식의 시(발췌)/ 심보선 (0) | 2020.07.12 |
클리셰의 파괴와 파괴의 양식화/ 오민석 (0) | 2020.06.04 |
본래면목 찾아가는로드로망의 여정...(발췌)/ 유응오 (0) | 2020.06.01 |
속도를 줄이면 시(詩)가 보입니다(발췌)/ 김재수 (0) | 2020.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