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 - 50
정숙자
1/10초 아끼기// 아낀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돌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소중하다는 꽃이다.
내가 제아무리 온갖 사물을 사랑하고 아낀다 해도
오히려 지구의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다, 고
평행이론 궤도의 누군가가 일러준다
나는 지금 그 말을 받아 적는 중이다
급할 때
엘리베이터 탔을 때
층 번호 누르기 전에 <닫힘> 버튼을 먼저 누르면 1/10초 아낄 수 있다
독서 중 밑줄을 그어야 할 때
좌우 끝까지 긋지 않고 3~5㎝ 정도만 그어도 1/10초 아낄 수 있다
(전자는 며느리가 남편한테서 들은 정보를 내게 준 꽃이고, 후자는 나 스스로 감각/지각한 실천적 돌이다)
이런 내 일상이 좀 찌질한 느낌이지만, 별수 없지
나는 물리학자들의 예리를 경외하고 질투하거든. 원자-분자-쿼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이-찌질히- 시야를 좁혔던가. 그리하여 힉스입자까지를 밝혀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 아무리 1/10초를 아낀다 해도 그건 거시세계의 행보일 뿐! 그렇지만 뭐 어떤가. 나는 내 위치에서 러시아식 발음으로 <아낌, 아낌의 이치> 되기를 멀리 주저치 않으리라.
끈이야 좀 쓰고 남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남을 수는 없다. 만일 시간이 남는다면 그 또한 낭비에 속할 테지. 흙 한 주먹도 곱고 아깝고 은혜로워 그림자도 새하얗게 빨아 입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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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펀』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열매보다 강한 잎』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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