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사과의 채굴/ 이도훈

검지 정숙자 2020. 6. 10. 21:59

 

 

    사과의 채굴

 

    이도훈

 

 

  한 입 베어 먹고 잊은 사과에

  개미 떼가 붙어 있다.

  뜨거운 햇살이었다.

 

  하얀 속살을

  침이 흐르도록 베어 문 기억이 선명하다.

  그새 사과는 꽤 많은 양의 채굴을 당한 듯 헐렁해졌다.

  한쪽 무게를 잃은 지구 내부의

  표본 같은 모습이다.

 

  사과는 얇은 껍질에 둘러싸인

  달콤하고 신맛 나는 지층

  햇볕의 각도를 재는 시시각각의 각도기쯤 될 것이다.

  아직 익지 않은 파란 쪽은

  햇살을 피해 숨은 달의 뒷면 같은 곳이다.

 

  끝까지 먹어치우지 못한 것들엔

  저렇게 검은색이 묻는다.

  껍질이 허물었으면

  그 알맹이를 남기지 말 일이다.

 

  사과는 여름 내내 태양을 채굴한다.

  그 일로 태양은 가끔 흐린 날이 되기도 한다.

  그런 사과를 채굴하는

  잠시의 존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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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펀』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 이도훈/ 2015년 『시와표현』으로 & 2020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맑은 날을 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