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잠깐 찾아온 여름엔 무얼 하지/ 권현형

검지 정숙자 2020. 6. 10. 17:41

 

 

    잠깐 찾아온 여름엔 무얼 하지

 

    권현형

 

 

  삼 일 내내 비가 와서

  움이 돋듯 발가락이 고물거려서

  고쳐 쓸만한 램프를 찾아 카메라를 찾아

  정성껏 먼지를 닦았다

 

  그러기에 미련 때문에 여전히 흘러왔을

  다음날 그리고 또 다음날

  디자인용 나무는 아니므로

  어떻게든 움직이며 살아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근막에

  잠들어 있는 슬픔까지 살아 움직인다

  여름 나무의 무수한 세포처럼 살아 솟구친다

 

  나무를 진실로 표현하려는 무대 위 무용수의

  떨리는 몸과 손가락의 선을 기억한다

  진실을 말하는 게 경전이라면

  도처에 경전과 깨달음이 있다

 

  잠깐 찾아온 여름엔 무얼 하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들을 것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도 가까이 있는 사물도

  다시 만날 때가 있다

 

  불과 재를 동시에 끌어안은 사랑의 노래

  '불나비'를 엘피판으로 들려주며 그는 곡직曲直이라고 말했다

  잠이 짧고 꿈이 짙은 능소화 속 한철,

  한 조각 여름의 울창鬱蒼을 나는 곡직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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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펀』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 권현형/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밥이나 먹자, 꽃아』 『포옹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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