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그린 그림들
김참
그녀가 거꾸로 매달린 남자와 여자를 그리는 동안 나는 음악을 들었어요. 그녀가 피뢰침 가득한 들판을 그리는 동안 천둥이 쳤고 벼락이 떨어졌어요. 날은 흐리고 습했지만 갑자기 천둥이 칠 줄은 몰랐지요.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음악만 듣고 있었어요.
그녀가 그린 눈 내리는 거리는 내가 그리는 그림 속에 있어요. 그녀는 내 그림 속에 있지요.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 그녀가 그린 그림엔 피뢰침이 있고 피뢰침 꼭대기엔 팔 없는 여자가 다리 없는 남자와 함께 거꾸로 걸려 있어요.
건물 꼭대기마다 피뢰침이 길게 솟아 있는 내 그림에는 작은 인형을 든 유령들이 걸어 다니고 있어요. 그들은 내가 그린 그림 속 파란 의자에 앉아 눈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린 남자와 여자를 그리는 내 그림 속 그녀를 우두커니 바라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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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펀』 2020-여름호 <주목, 이 시인을 만나다/ 시집 속 대표시> 에서
* 김참/ 2020년 3월에 다섯 번째 시집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문학동네)를 낸 김참 시인을 만났다. 김참 시인은 199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인터뷰 진행은 전구 문학평론가, 정가을 시인, 송진 책임편집인이 참석, 진행을 함께 했다.』(p-30,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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