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철학사전/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0. 6. 10. 02:22

 

 

    철학사전

 

    정숙자 

 

 

  나 아직 태어나기 전

  세상은 이미 한껏 밝았다

 

  고통 사랑 전쟁도 더러 엎질러졌고

  각종 발명품도 앞을 다퉜다

 

  차가운 열정 풍성히 피어

  질서가 길이 되고, 법이 평화가 되고, 더러는 굴욕이 권력이 되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응시가 어둠을 실험했는지

 

  율리우스력이니 시공간도 휜다느니 앎보다 실천이라느니

  지표엔 색색 정의가 그득했지만, 그보다 더 깊었던 사람

 

  겹겹으로 여위었기에

  지금도 속속

  어디선가 새로운 기원 움트고 있다

 

  숭고하다고 말해도 될까?

 

  하나뿐인 생명 하나에 걸고 간 이들

  한 번뿐인 그림자

  한 길에 묻고 간 그들

 

  나 아직 젊기도 전에, 푸른 강변 찾기도 전에

  그런 사람 그런 하늘

  그러한 전설

  지금도 우리 곁에 어딘가에 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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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펀』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열매보다 강한 잎』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