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산책일기/ 3월2일
이하석
가창 면소재지에서 신천을 따라 걸어 내려온다. 파동 쪽 강변에 매화가 피었다. 징검다리 건너가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으로 사선 강변 파동 도서관 앞뜰의 매화나무 아래 앉아 마신다. 봄들어 최고의 사치를 누리고 있다는 행복한 기분. 그러나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도서관 주변은 대낮인데도 사람이 없어 고즈넉하다. 나는 이내,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 속에 버려진 듯하다. 문득 인기척에 돌아보니, 40대의 한 남자가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는 저만치서 얼른 마스크를 고쳐 쓴다. 나도 차 마시려고 턱 아래 내려놓은 마스크를 다시 올려 쓴다. 그게 요즘의 예의가 됐다. 힐끗 매화를 올려다보곤 그는 내게 목례를 하며 지나간다. 갑자기 서로 울컥해지는 느낌!
-전문-
▣ 연민이 느껴지는 광경이지만 무서운 광경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세계와 인간들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불가피하겠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존주의는 모든 인간 현실의 불안정과 위험을 강조하고 인간은 '세계에 던져저 있다'는 점과 인간의 자유는 그것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 한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주장이 새삼 생각난다. 고통 · 타락 · 질병 · 죽음 · 등의 실존의 부정적 측면들이 인간 현실의 본질적 특징이 된다는 주장도 그렇다. 코로나19의 경험은 실존에 대해 각성하게 만든다. 현편으로는 새삼스레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서로 무엇이며, 그 관계의 한계는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p. 20-21)
--------------
* 『사이펀』 2020-여름호 <사이펀의 창/ 그리운 적들이여 안녕?> 발췌
* 이하석/ 197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투명한 속』 『김씨의 옆얼굴』 『우리 낯선 사람들』『천둥의 뿌리』 등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그녀가 그린 그림들/ 김참 (0) | 2020.06.10 |
|---|---|
| 철학사전/ 정숙자 (0) | 2020.06.10 |
| 김영희_인간 생태계와 중간균...(발췌)/ 나는 종속영양생물이다 : 박순원 (0) | 2020.06.08 |
| 손바닥 소설/ 정영효 (0) | 2020.06.07 |
| 튤립이 피는 방식/ 이채민 (0) | 2020.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