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영희_인간 생태계와 중간균...(발췌)/ 나는 종속영양생물이다 : 박순원

검지 정숙자 2020. 6. 8. 18:34

 

 

    나는 종속영양생물이다

 

    박순원

 

 

  독립영양생물은 빛에너지를 이용해 탄수화물을 합성한다 물과 이산화탄소가 재료다 물 중에서 산소는 버리고 수소만 쓴다

 

  나는 종속영양생물이다 독립영양생물이 탄수화물을 합성하면 그 탄수화물을 빼앗아 먹는다 빼앗는 과정에서 독립영양생물은 대부분 죽거나 다친다 독립영양생물도 착한 놈은 아니다

 

  엽록체는 아주 옛날 단세포생물이었는데 그게 시아노박테리아 세균이다. 그러니까 광합성생물의 선조들이 시아노박테리아를 잡아먹어 세포 안에 가둔 것이다. 그래서 엽록체는 외막 내막 두 가지 세포막이 있다

 

  엽록체는 엉뚱한 세포막에 갇혀 공장처럼 영양을 만들고 만들고 만들다가 풀이 죽을 때 나무가 죽을 때 같이 죽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갇혀 있으니까 자기가 갇힌 줄도 모르고 조상 대대로 하도 오래 되어 잡아먹힌 줄도 모르고

 

  시아노박테리아는 요새도 냇물에 흔하게 있다는데 어항을 갈아주지 않고 내버려 두면 파랗게 떠다니다 미끌미끌 어항 벽에 달라붙는 것들이다 금방 생겼다가 쉽게 씻겨 내려가는 가볍고 자유롭고 귀찮고 간지럽고 번거로운

   -전문- 

 

 

  인간 생태계와 중간균의 활동 (발췌)_김영희/ 문학평론가 

  스스로 영양분을 합성할 수 없는 종속영양생물은 독립영양생물을 포착하여 영양분을 섭취한다. 그 과정에서 독립영양생물은 "죽거나 다친다" 주지하다시피 동물은 종속영양생물이며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식물은 독립영양생물이다. 먹이사슬의 가장 하층을 이루는 독립영양생물일수록 생명은 피라미드 위쪽의 생물에 '종속'되어 있다. '독립'과 '종속'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독립영양생물을 인간 생태계의 약자이거나 '착한 놈들'이라고 서둘러 규정하기는 어렵다. 독립영양생물 또한 "시아노박테리아"를 포획하여 세포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엽록체는 본래 단세포 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였는데, 식물 세포 내로 들어와 공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시아노박테리아가 식물세포 내로 들어온 계기를 '포식'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공생관계라기보다는 포식 상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공생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실제로는 포식이 만연하게 행해지는 인간 생태계를 떠올려 보면 지연스럽다./ 이 같은 메커니즘에서 시인이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시아노박테리아의 운명이다. 엽록체는 원래 독립 생활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였는데, "엉뚱한 세포막"에 갇혀서, "영양을 만들고 만들다가" 죽는 운명이 되었다. 종속의 역사는 유구하고, 탄생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갇혀있으므로 자신이 잡아먹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어렵다. 시인은 시아노박테리아의 운명에 "공장처럼"이라는 비유를 송곳처럼 찔러 넣었다. 이는 자신이 자본의 먹이사슬에 묶여 있는 줄도 모르고, 사슬이라는 본질보다도 황금이라는 외양에 매료된 채로, 작업장에 갇혀서 상품 생산에 일생을 보내는, 현대의 무수한 '우리들'에 대한 은유이다.(p. 시 47-48/ 론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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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 2020-여름호 <오늘의 시인/ 작품론>에서

  * 박순원/ 청북 청주 출생, 2005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런데 그런데』 『에르고스테롤』 등

  * 김영희/ 문학평론가, 2009년 『창작과비평』 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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