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한용국_시적 기투, 그 산란...(발췌)/ 나비와 피라미드 : 사공정숙

검지 정숙자 2020. 6. 6. 15:35

 

 

    나비와 피라미드

 

    사공정숙

 

 

  나비 한 마리가 출근길에

  처무우밭도 아닌

  바다도 아닌

  지하철 역사로 팔랑거리며 내려앉았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다시 더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

  가만히 멈춘 날갯짓

  나비에게 역은 저 너머 얼음 박힌 우주처럼,

  끝내 풀지 못할 방정식처럼

  차갑고도 큰 세계이다

  나비는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다

  지하철을 타고 꽃밭으로 가려는 것도 아니다

  나비는 자신의 피라미드를 찾아온 것이다

  봉인되지 않은 나비의 피라미드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더 단단해진 무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발자국 소리,

  전동차의 울림과 궤적을 부장품으로 넣었음이다

  부장품이 사라진 역사는

  나비의 존재를 우상화하고

  저물녘 낡아가는 기울기 속에서

  꽃의 지문을 더듬던 혼잣말까지

  모두 박제로 만들어간다

  여기, 저기 흔들리며 걸어가는 나비의 피라미드

    -전문-

 

 

  ▶ 시적 기투, 그 산란과 스밈(발췌)_ 한용국/ 시인 

  1930년대에 김기림이 발견한 나비는, 창무우밭을 꿈꾸었으나 끝내 바다에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던 나비였다. 하지만 그 나비는 그 냉혹한 바다에서 다행히도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이 시대의 나비는 그렇지 못하다. 찾아가야 할 "청무우밭"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찾아가려는 의지조차 무력화 된 것처럼 보인다. 나비는 "청무우밭"을 찾다가 역에 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역'을 찾아들었다. 그 "역은 저 너머 얼음박힌 우주처럼/ 끝내 풀지 못한 방정식처럼/ 차갑고 큰" 세계다. "지하철을 타고 꽃밭으로 가려는 것도 아니다"에서 어떤 암시를 읽어낼 수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역을 벗어날 수 있는 "지하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이 "청무우밭"이 아닌 줄 알면서도 찾아온 나비는, 현대 욕망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이지만, 비극의 강도는 짙다. 왜냐하면 바로 그 "역"이 "나비" "자신의 피라미드"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역"으로 찾아들기 전, "나비"가 살던 세계를 생각해 보자. "저물녘 낡아가는 기울기 속에서/ 꽃의 지문을 더듬던" 세계는 과연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였을까. 아니면 평화롭고 아름답게 위장된 세계였을까. 결국 남은 것은 "전동차의 울림과 궤적" 뿐이고, '청무우밭'을 찾아가는 나비는 우상화되어 버렸다. 삶의 모든 것이 박제가 되어 버린 채 저마다 자신의 무덤으로 흔들리는 세계, 결국 이 세계는 모두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역"에서 끝내 자신의 "피라미드"가 되어가는 존재들의 무덤 속이라는 비극적인 인식인 것이다.(p. 시 119/ 론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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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파MUNPA』 2020-여름호 <소시집/ 신작시/ 작품론>에서

  * 사공정숙/ 1998년 『예술세계』로 수필 부문 2005년 『문학시대』 로 시 부문 등단, 시집 『푸른 장미』, 수필집 『꿈을 잇는 조각보』, 산문집 『노매실의 초가집』, 서울시 『도보해설 스토리』메뉴얼 북 등

  * 한용국/ 200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