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묻다
이경교
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을 때,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그냥 울음을 운다고 생각했다. 중국 창저우 외국인 아파트 202호에 거주한 후,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하던 어느 봄날 새벽이었다. 낯선 새 한 마리가 창틀에 앉아 울었다. 기상 시간을 어찌 알았을까. 새벽 6시였다. 새는 날마다 그 시간이면 날아와 울었다
그래그래, 잘 잤니? 또 왔구나. 나도 반가운 인사로 새를 맞이했다. 새는 한참을 뭐라 지저귀었다. 그때 문득 저 새도 나처럼 혼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새소리에 눈을 뜬 나는 보았다. 전에 없이 호기심으로 빛나는 새의 작은 눈을, 새는 우는 게 아니라 묻고 있었다. 이, 이름이, 뭐야? 그렇게 묻고 있었다. 내 이름은 어떻게 답해야 하나? 나는 이경교야, 아니 리칭자오야! 새는 따지듯 더 극성스럽게 울어댔다. 이름이 나를 대신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름이 없어! 이젠 네가 부르고 싶은 내로 부르렴. 새는 수긍한다는 표정을 짓더니 날아갔다
새는 거르지 않고 새벽 창가로 날아왔다. 대화도 점점 깊어갔다. 새는 내 말뜻을 알아들었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이국의 계절을 건넜다. 한 학기 동안 이어진 우리의 대화는 내가 새의 책이라 이름 붙인 어느 노트에 빼곡하게 적혀있다. 먼 훗날 누군가 그 노트를 펼쳤을 때 그곳엔 鳥曲이란 장정만 남아있을까. 얼굴 없는 새 한 마리 나래를 치고 날아오를까
가을이 저문 날, 그날은 달랐다. 나는 새가 작별을 고하러 왔다는 걸 알았다. 새가 그늘진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으므로, 울지 않았으므로! 그래 어디로 가니? 가만히 듣고 있던 새가 이방의 언어로 대답했다. 짧고 희미한 울음이었다. 그래? 남쪽으로 간다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새가 쓸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의 작은 눈에 언뜻 그늘이 스쳐갔다. 그리고 새는 다시 오지 않았다
-전문-
▶ 겹시라는 웜홀(발췌)_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이름'에 대한 시인의 불신과 부정은 신작 「이름을 묻다」에서 새와의 대화라는 흥미로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나타난다./ 한 편의 아름다운 우화로 읽히는 이 시에서 "이름이 나를 대신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름이 없어! 이젠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렴. 새는 수긍한다는 표정을 짓더니 날아갔다"는 대목은 신이 미물의 모습으로 수도자에게 나타나 진리를 깨우쳐주는 신화 속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평범한 새 한 마리가 평범함이라는 외피를 벗고 진리의 얼굴을 보여주는 현현顯現, 시인은 한 계절 동안 새와 대화한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들을 "새의 책이라 이름 붙인 어느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두지만 "먼 훗날, 누군가 그 노트를 펼쳤을 때 그곳엔 鳥曲이란 장정만 남아 있을" 거라고, "얼굴 없는 새 한 마리 나래를 치고 날아오를" 거라고 예언하면서 '새의 책' 명명과 노트 필사로 시도된 언어적 복제가 새와의 대화라는 원본의 아우라(aura)를 결코 재현해낼 수 없음을 강조한다.(p. 시 100-101/ 론 111)
----------------
* 『문파MUNPA』 2020-여름호 <소시집/ 신작시/ 작품론>에서
* 이경교/ 1986년 『월간문학』 으로 등단, 시집 『목련을 읽는 순서』 『장미도 월식을 아는가』 등
* 이병철/ 2014년 『시인수첩』으로 시 부문 & 2014년 『작가세계』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비평집 『원룸속의 시인들』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용국_시적 기투, 그 산란...(발췌)/ 나비와 피라미드 : 사공정숙 (0) | 2020.06.06 |
|---|---|
| 백구과극(白駒過隙)/ 정숙자 (0) | 2020.06.05 |
| 각주구검(刻舟求劍)/ 김완하 (0) | 2020.06.04 |
| 박성현_문장의 미래, 혹은 '침묵의'...(발췌)/ 가족 : 최금녀 (0) | 2020.06.04 |
| 속수무책/ 박지영 (0) | 2020.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