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내린다
유병록
하늘은 어둡고
저 높은 곳에서 빗방울이
아래로 아래로
창밖을 내다보다가
나도
아래로 아래로
열일곱 살부터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은 첩첩산중
단점을 찾는 건 재빨리
가까운 사람은 자꾸 줄고
미워하는 사람은 줄지 않고
내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여전히 서투르고
봄비는 그치지 않고
웃으며 뛰어다니던 빗속의 시절은 저 멀리
기상청에서는
올해는 비가 덜 내리고
무더운 날씨 이어진다는데
비 오는 날만이라도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바꿔 먹어야 하나
그건 가능한 일일까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데
벌써 마흔의 비가 내리네
꾸짖듯이는 아니고
그저 넌지시
아래로 아래로
내 머리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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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 2020-6월호 <詩 # 2>에서
* 유병록/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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