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서재
김성렬
뭔가를 쓰고 끄적이느라
어두컴컴한 골방에 갇혀 살던 어느 날
책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현실 뒤늦게 깨달은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 그가
오랫동안 머물던 서재 불 꺼진 지 오래됐다
그날 이후, 전화는 불통,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
밥값 술값 떨어진 지 오래됐는지
뻔질나게 드나들던 발걸음 뚝 끊겼다
머릿속에 그의 존재감 지워질 때
그를 만난 곳은 지방의
재개발 아파트 현장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일당 십만 원짜리
공사장 허드렛일, 몰골은
책꽂이 먼지 뒤집어쓴 한 권의 서적처럼 낡았다
함바집 뽀글뽀글 파마머리 중년 여자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는 촌구석
돈 벌러 무작정 상경한 촌뜨기
노무자 대하듯 그를 김 씨, 라는 호칭에
서럽다 못해 해는 떴는데
갑자기 세상이 캄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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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 2020-6월호 <詩 # 2>에서
* 김성렬/ 2008년 『시평』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종점으로 가는 여자』 『본전 생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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