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불 꺼진 서재/ 김성렬

검지 정숙자 2020. 6. 2. 16:50

 

 

    불 꺼진 서재

 

    김성렬

 

 

  뭔가를 쓰고 끄적이느라

  어두컴컴한 골방에 갇혀 살던 어느 날

  책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현실 뒤늦게 깨달은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 그가

  오랫동안 머물던 서재 불 꺼진 지 오래됐다

  그날 이후, 전화는 불통,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

  밥값 술값 떨어진 지 오래됐는지

  뻔질나게 드나들던 발걸음 뚝 끊겼다

  머릿속에 그의 존재감 지워질 때

  그를 만난 곳은 지방의

  재개발 아파트 현장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일당 십만 원짜리

  공사장 허드렛일, 몰골은

  책꽂이 먼지 뒤집어쓴 한 권의 서적처럼 낡았다

  함바집 뽀글뽀글 파마머리 중년 여자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는 촌구석

  돈 벌러 무작정 상경한 촌뜨기

  노무자 대하듯 그를 김 씨, 라는 호칭에

  서럽다 못해 해는 떴는데

  갑자기 세상이 캄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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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동네』 2020-6월호 <詩 # 2>에서

   * 김성렬/ 2008년 『시평』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종점으로 가는 여자』 『본전 생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