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깎기
양곡
늙은 아내가 늙은 남편의 손톱 · 발톱을 깎아준다
젊은 한때는 누구보다도 튼튼하고 힘찼던 남편의 손과 발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등짐을 져 나르기도 하고
낫과 톱으로 산판을 벗겨 삽과 괭이로 산밭을
일구어 밤숲을 만들어 내기도 했던 세월
남편은 산짐승처럼 세상에서 먹이를 구해오고
아내는 집안에서 제비새끼 같은 아이들의 입을 먹이고
쩡쩡 갈라지는 얼음물에 빨래를 하고
밥을 해 나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틈틈이 간식을 만들어 남편에게 나르기도 했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 시집을 가고 장가를 들어 분가해 나가고
이제는 낮일을 못나가는 늙은 남편이 자리보전으로
하루해를 보내는 동안 여전히 삼시세끼 밥을 하고
마당을 쓸고 옷가지를 햇볕에 널어 말리는 늙은 아내는
햇살 좋은 아침나절 한때를 골라 한껏 야위어진
남편의 머리를 무릎에다 뉘어놓고 손톱 · 발톱을 깎아준다
어머니가 갓안아기의 손톱을 물어뜯어주던 그때처럼
들창 가에 쏟아지는 겨울햇살이 좋은 아침나절 한때를 골라
아내가 남편의 손톱 · 발톱을 정성들여 깎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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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와문학』 2020-여름호 <시> 에서
* 양곡/ 1959년 경남 산청 출생, 2002년 『문예운동』으로 등단, 시집 『혁명은 오지 않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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