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불교와문학신인상 시 당선작> 中
폭풍주의보
함정수
눈발이 거세게 문짝을 할퀴고 가던 밤
늦도록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방안에 내려앉은 무거운 기압골이 문지방을 맴돌고
식구들은 서로 겁먹은 눈빛을 나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고요가 긴장으로 팽팽했다
곧 내던져질 집기를 감추는 것이
그 순간 우리가 할 일이었다
어머니는 윗목에서 밀국수를 밀며 몸서리를 쳤고
그날 저녁 술에 취해 늦게 돌아온 아버지는
마당에 숨겨놓은 집기들을 찾아내어 내던지기 시작했다
막내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고
언니와 나는 밖으로 쫓겨나 차가운 새벽을 견뎠다
우리들의 어린 날이 찌그러진 양재기처럼 일그러졌다
날이 밝자 밤새 들끓던 푹풍이 저기압으로 눕혀지고
내던져진 세간들은 어머니의 손에서 제자리를 잡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침 햇살이 우리 집 사립문에도 찾아들었다
조용히 아침 밥상이 차려지고
우리들은 허기진 뱃속을 묵묵히 채워나갔다
-전문-
* 심사위원: 수완 공광규 이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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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와문학』 2020-여름호 <불교와문학 신인상 시 당선작> 에서
* 함정수/ 1964년 강원 평창 출생, 강릉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과기대 평생교육원 시 창작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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