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환원/ 김명철

검지 정숙자 2020. 6. 1. 02:28

 

 

    환원

 

    김명철

 

 

  당신에게 감염되었던 봄이 가고

  야트막한 처마가 있는 '케냐 펜션'에 누웠습니다

  머리맡에서 아메리카노의 얼음의 녹고 있습니다

  저문 창 안으로 한쪽이 무너진 달이 떠오르고 

 

  당신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떠날 수 있겠습니까

 

  창문 밖 벽으로 다가오는 조심스런 발자국 소리들과

  떨리는 목소리와

  벽에 기댄 한동안의 침묵처럼

  우리는 뜨겁고 차가운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카페인에 중독된 듯

  당신에게 중독된 책과 지하철과 나와 생각들은

  들뜬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바로 곁에서

  먼지처럼 공허가 우리 주변을 떠다녔지만

 

  동물보다는 식물을 식물보다는 사물을 더 좋아할 수도 있어

 

  당신은 나에게서

  당신의 단 하나도 남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완벽하게 무너진 달처럼 완벽하게 녹아내린 향처럼

  무색과 무형과 무심으로 환원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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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와문학』 2020-여름호 <시> 에서

  * 김명철/ 충북 옥천 출생,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짧게, 카운터펀치』 『바람의 기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