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줄이면 시詩가 보입니다
김재수
돌이켜보면 지난 반세기를 정말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한국전쟁이란 참혹한 시련을 겪었음에도 한강의 기적을 이룸은 물론 우리의 위상이 OECD라는 국제적 기구에 가입과 세계 경제 속에서 크게 한몫을 담당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정치적으로도 서양에서 이룩한 자유 민주화 과정을 지극히 짧은 시간에 이룩하였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오늘날 세계를 놀라게 하는 대단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는 많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경제 지상주의는 이웃 간의 인정을 잃어버리게 했고,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고 달려오기만 한 삶은 마침내 도덕적 해이와 사회적 불신으로 공동체 의식을 약화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사자성어四子成語에 주마간산走馬看山, 주마간화走馬看花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이나 꽃을 본다는 뜻으로, 사물을 자세히 보지 못하고 겉만 대강 보고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살펴보면 주마간화走馬看花의 뜻이 본디는 이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46세에야 겨우 급제하여 진사가 된 당唐나라 시인 맹교孟郊가 한 술좌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욾었는데, 여기에서 '주마간화走馬看花'가 유래했습니다.
昔日齷齪不足誇(석일악착부족과)
지난날 궁색할 때는 자랑할 것 없더니
今朝放蕩思無涯(금조방탕사무애)
오늘 아침에는 우쭐하여 생각에 거칠 것이 없어라
春風得意馬蹄疾(춘풍득의마제질)
봄바람에 뜻을 얻어 세차게 말을 모니
一日看盡長安花(일일간진장안화)
하루 만에 장안의 꽃을 다 보았네
-전문, 「등과 후」(登科後)
주마간화走馬看花의 원래 의미는 "뜻을 얻어 즐거운 마음으로 말을 타고 달려 하루 만에 장안의 좋은 것을 모두 보았다"는 것인데, 후에 뜻이 바뀌어 대강대강 둘러본다는 뜻의 주마간산走馬看山과 같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자성어四子成語들은 빨리하다 보면 자세히 보아야 할 것을 빠뜨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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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 2020-여름호 <시에 에세이> 에서
* 김재수/ 경북 상주 출생, 1974년 『소년』으로 등단, 동시집 『낙서가 있는 골목』 『농부와 들꽃』 등, 동화집 『사랑이 꽃피는 언덕』 『하느님의 나들이』, 산문집 『트임과 터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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