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는 왜 중용을 강조하는가
최일범/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교수
돌이켜 보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대립, 모순이다, 우주는 음양陰凉의 대립으로 운행하고, 인간은 남녀의 대립으로 생화生化한다. 주역의 원리는 상반상성相反相成, 서로 대립하므로 서로 이룬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문제는 인간의 눈에 있다. 붓다는 생사의 대립과 고통 속에서 열반의 깨달음을 얻었다. 의상의 <법성게>는 "생사와 열반이 어울리고 있다."고 노래하지 않은가? 공자의 인仁도'너와 나'의 대립을 소통하는 원리다. 북송의 유학자 정명도程明道는 의학에서 마비를 불인不仁이라고 하는 데 착안해서 인仁을 혈맥 유통의 원리, 천인합일의 원리로 해석했다. 그가 장자莊子의 "독여천지정신상왕래獨與天地精神相往來"를 좋아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장자의 정신은 천지와 서로 왕래할 뿐 아니라, 만물이 서로 왕래한다. 『장자』「변무편駢拇篇」에 이런 말이 있다. "오리의 다리가 짧지만 이어주면 싫어하고, 학의 다리가 길지만 자르면 슬퍼한다. 그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 말을 생긴 대로 살라는 운명론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만물의 외형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그 내면의 본성을 주시하라는 뜻이다.
유, 불, 도 삼교의 중도 정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의仁義, 열반涅槃, 무위(無爲集는 본성을 깨닫지 않 는 한 결코 발견할 수 없고, 각고의 노력으로 본성을 기르지 않는 한 결코 이룰 수 없다. 『중용』(제20장-18항: 블로그 참조)에서는 "남이 한 번 해서 이루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 해서 이루면 나는 천 번을 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중도, 중용 정신의 핵심이 있다. 중도, 중용은 최상의 진리, 본체를 가리키고 또한 진리에 대한 인식 방법뿐 아니라 실천 원리도 가리킨다. 우리는 한국불교에서 좋은 예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성철스님의 유명한 『백일법문』이라는 책은 중도를 중심으로 불교사상을 정리하고, 특히 선과 교를 일관하는 개념으로 중도를 천명하였다. 중도,중용의 철학정신을 사회적 대립의 특수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절제와 양보를 요구하는 일시적 방편으로 알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p.48-49)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대덕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맹자는, 공손추가 호연지기를 묻자 "그 기氣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여, 정직함으로 잘 길러 해치지 않으면, 천지天地 사이에 꽉 차게 된다."고 답한다. 맹자는 또한 호연지기는 의義와 도道를 배합한 기氣로서, 오랜 기간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축적되고 길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맹자』「공손추 상」제2장). 이런 호연지기를 기르면, 스스로 성찰하여 자신이 정직하다고 판단하는 일에는 비록 천만인이 앞을 막아도 거리낌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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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평론』2020-봄호 <특집|중도의 철학, 양극화 극복의 길>에서
* 최일범/ 성균관대 유학과, 동 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박사), 성균관대 유학대학 학장 및 유교문화 연구소장, 도교문화학회 회장 역임. 주요 논저로 『불교의 중도와 유교의 중용사상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논문) 등의 논문과 『한국의 윤리사상』『중국 윤리사상』등의 저서와 『정좌수행의 이론과 실제』등의 역서가 있다. 現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소장,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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