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실기론』송수권 지음/ P.414 ~P.415
3. 말가락은 민족정서의 힘으로 남는다
이 대목에서는 박묵월은 일찍이 쉬임(휴지)이 더욱 사람의 간장을 긁어댄다고 강의한 적이 있다. 그는 1960년대의 효자동 근처에서 조석으로 뻐꾹새 울음을 듣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강의시간에 경상도 방언이 뻐꾹새 울음 같은 가락에 얼마나 부적함합 말인가를 누누이 설명하였다. 그리고 서정주의 >귀촉도>를 예로 들면서 그 말가락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이 말을 오래 기억하다가 1970년대에 와서 한 편의 시를 썼는데, 그것이 <지리산 뻐꾹새>이다. 써놓고 보니 힘이 넘치는 시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힘이 가락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등단작 <산문(山門)에 기대어> 외 많은 작품들도 이렇게 해서 써지지 않았나 싶다.
여러 산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떼로 울움 울어
석 석 삼 년도 봄을 어 넘겨서야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 하(下)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내면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 중(中)
저 연연(連連)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오래 남은 추스름 끝에
비로소 한 소리 없는 강(江)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하동 쪽 남해로 흘러들어
남해군도(南海群島)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지리산 하(下)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이 세석(細石)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송수권, <지리산 뻐꾹새> 전문
만일 한꺼번네 여러 마리의 뻐꾸기 떼가 울어버렸다면 시 속에서 가락 만들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마리의 숨은 뻐꾹새가 뜸들여 울고 욺으로써 지리산의 만학천봉을 다 울릴 수 있음을 알았다. 가장 높은 소리(떼 울음)가 세상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소리(한 울음)가 세상을 깨운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것이 먹혀들어 2010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에도 출제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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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개발을 위한 유형학습 『시 창작 실기론』에서/ 2010.12.24, 2판1쇄 (주)문학사상사 펴냄
*송수권/ 전남 고흥 출생, 1975년『문학사상』으로 등단/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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