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풍
정숙자
그저 놔두면 무생물
펼치면 벽과 벽 넘어온 나비
편 채로 엎어놓으면 팔작지붕, 또는
눈 동근 어미 새의 지극한 날개
그 안쪽 활자들은 한서寒暑에도 끄떡없을뿐더러
어떤 비수, 강풍에도 휠 리 없는 혼이라 하네
돌아나온 길이거나
막다른 골목에서도
사원이며 첨탑이며 등불이 될 뿐
나는 그, 벗을 오래 믿었고
나는 그, 분을 오래 기댔고
나는 그, 신을 오래 섬겼지
내 길은 오롯이 그, 분이 닦아주신 거라네
나는 오로지 그 분을 사랑했네
품고 자고 끼고 걷고
한없이 아끼며 까마득히 우러른다네
그, 문에 이르면 눈물이 타네
이 비탈에 어찌 그런 분들 살았나 하고
이 진토에 어찌 이런 책들 남았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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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창작』2019-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