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시인
- 이웃들
정숙자
고독은 약자를 노린다
하지만 그와 대적해선 안된다
그가 약자를 찾는 이유는 '지금이 바로 강해질 기회'임을 알리려는
것 뿐, 악의의 접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긴밀한 우정이 어
디 있겠는가. 고독은 자아를 성찰케 하고 미욱함을 살피게 하며 의지
를 세우게 한다.
한 사람이 한 걸음 나아가면 열 명의 적이 나타나는 이 지옥에서,
고독한 시공을 멀리한다면 머잖아 우리의 예지는 녹이 슬고, 눈빛 또
한 안개에 싸여 햇빛이 쏟아져도 눅눅할 것이리라. 얼마 전 새 이웃
과 인사를 했다.
"종종 차 마시러 와도 될까요?" 일초일순 일사각오 일촉즉발 "아
안 돼!"라고 답했다. 그 후 이웃은 벌어졌다. 오며가며 내 그림자만
얼비쳐도 외면해버린다. 시간 때문이라고 미리 일러두었지만 그리
넘어가긴 힘든가보다.
다시 한 겹 고독해진다
좋아, 고독은 가장 두꺼운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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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람』 2018-봄호 <시와사람 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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