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학
-이웃들
정숙자
그는 사각형이야
들고만 있어도 경건해지지
곁에 두고만 봐도 향긋해지지
사러 갈 계획만으로도 그득해지지
소슬한 침묵, 이 산책로는
사각형에 무척 잘 어울리지
충만한 침묵, 이 산책로는
기원전 사각형도 풀어 보이지
대체 불가능한 24시간 늘려 쓰는 길이란 오직 이 길 뿐. 걷기+읽기,
동시 가능한 이 산책로는 (나에게는) 좀 더 긴 책상이자 슬~관절 쓰
다듬는 의약 부외품. 오늘도 이 길 걸으며 사각형 속에서 헤엄치고
뛰놀고 비행하는데,
"우리 집에 안 보는 책 몇 권 있는데 갖다 드릴까요? 책을 좋아하시
는 거 같아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도 너무 많아서요. 그래서 이렇게…
예! 고맙습니다!"
그 할머니도 날마다 이 길 걸으시는가보다. 나를 익히 아는 눈치다.
나로서는 사각형에만 눈을 두어 그 분이 낯설지만… 이 길의 등불이
란 사각형에서만 얻어지는 게 아닌 것이다.
따뜻하고 충만한…
경건하고 향긋한…
이 또한 살아 움직이는 초시간적 사각형의 살롱이며 실재다
침묵을 끼고 묵적을 사모하며 이 외길은 남몰래 풋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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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2018-봄호 <시와사람 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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