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캐릭터 대 캐릭터

검지 정숙자 2018. 2. 16. 01:22

 

 

    캐릭터 대 캐릭터

 

      정숙자

 

 

  다른 해변에 도착해버리고 만다

  하루는 물론 일 년, 1분, 일생까지도

 

  아무리 갈고 닦고 쌓으려 해도 시간은 봉인된 채 제 갈 곳으로만 저벅저

벅 흐른다

  운명을 쥔 그 어깨 보고 나서는 출구 없는 광야가 가로놓여도 궁금한 것

조차 없다

 

  성자들

  그들이

  집필하지 않은 이유가 어렴풋 드러난다

 

       *       *

 

  까도-까도알맹이가 없다고 껍질뿐이라고들 투덜대지만

 

  洋, 파!

 

  그 행성의 원주율과 깨끗한 위도가 요즈막엔 얼마나 든든한지 고마운

지. 울퉁불퉁하지 않고 글썽글썽하지도 않고 지구를 쏙 뺀 둥긂과 흙색

겉껍질과 칼날 없는 칼자루 빼어들고 햇빛 수호하는 이파리들과

 

       *       *

 

  파도-파도 흙뿐이라고 대지를 탓한 적 있었던가?

 

  지층, 누가 그에게 감히 까도-까도 껍질이라고 '속았다'고 힐난할 수 있

을 것인가. 두 겹을 난도질해도 다시 한 겹 웃어주는 그 깊은 동심원이 곧

우리가 한세월 파종하고 가꾸고 기다려온 얼굴 아니었던가

 

  너무 빠르거나 흐려지는 시계 아래서

  떠밀리는 낙엽과 파도

  쉬어갈 곳 못 찾은 바람소리 횡야설수야설 배회하는 밤

 

    ------------

   *『시산맥』2018-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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