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2017-12월호|특별좌담 / 2017 올해의 시를 말한다|(발췌)
문학에서, 다시 문학으로
김안 · 기혁 · 전소영(사회)
1. 2017년, 원점의 귀환/ 2. 이후, 단절과 지속 1-촛불과 페미니즘/ 3. 이후, 단절과 지속 2-블랙리스트와 미당문학상/ 4. 이후, 단절과 지속 3-문단 경계와 독자/ 5. 2017년 주목할 만한 시집/ 6. 참여와 책임, 시(인)의 미래
2017년 주목할 만한 시집
전소영: 시절이 시절인지라 다소 무거운 이슈들로 좌담을 끌어왔네요. 이제 본업에 충실한 화제로 넘어오겠습니다. 올해에도 여전히 문단 안팎으로 '시의 부흥'이 운위되고 있는 가운데 무게감 있는 시집이 여럿 출간되었습니다. 눈길 가는 첫 시집도 많았고요. 한 해 동안 출간된 시집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들을 각자 소개하며 시단의 현황을 조명해보겠습니다. 기혁 선생님부터 말씀해주시겠어요?
기 혁: 신현림의 『반지하 앨리스』는 외롭고 소외된 주체들의 가능성에 주목한 시집입니다. 그러나 연민과 구원을 떠올리기에 앞서, 소외된 주체의 목소리로 비루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만 허락도딘 능청스러운 유희를 시도합니다. 조금은 엉뚱하고 즉흥적으로 마무리되는 시행들이, '자상'의 현실과 '반지하'의 현실을 연결하는 탈출구로써 제시되고 있습니다.
심보선의 『오늘은 잘 모르겠어』는 절대적인 것, 공통적인 것이 사라진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의 현실밖에 없다는 인식이 엿보였어요. 신조차도 즉흥적으로 호출되는 대상으로 비춰지는데, 시인은 이를 토대로 현재의 노동을 수행하지 않는 시(예술)의 미래적 가능성을 회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경후의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은 텅 빈 공간으로 인식한 세계 속에 분절된 이미지와 감정 들을 배치하고, 각각의 대상들이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부유할 수 있는 중력을 섬세한 시적 긴장으로 전환합니다, 한 편의 시가 오직 하나의 주제에 대한 무게만으로 고백되는 형식은 는여겨 볼만했습니다.
신동옥의 『고래가 되는 꿈』은 이원론적 세계를 봉합하지 못한 낭만주의자의 비애와 죄책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시집입니다. "비트"라는 부제가 붙은 연작에서 드러나듯이, 스스로를 은폐해야만 동일한 체제에 속할 수 있는 현실을 낯선 이미지를 동해 재현하고 있습니다.
김산의 『치명』은 비생산적인 언어의 반복을 통해서, 원초적인 상상력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상력의 공간이 성소로서 인식되거나, 현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아서, 그간 언어에 천착했던 시인들과는 다른 눈높이를 보여줍니다.
김은상의 『유다복음』은 세계 내 존재로서 겪게 되는 고독과 불안을 관념적인 언어를 통해 고백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학적 방법론이나 용어들이 낯설게 배치되는데, 배신이나 모순의 종교처럼 등장합니다. 물질과 성신의 자리가 뒤바꾸기도 하고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불신과 분열을 진정성 있는 자세로 전유하려는 의지가 돋보였습니다.
안미옥의 『온』은 허물어짐의 불안을 끌어안는 대신, 허물어짐을 기정사실화 하는 시적 상황을 제시합니다. 기억하거나 연민해야 할 대상들이 시인의 마음속에서 먼저 일으켜 세워지는 것이죠. 그로인해 이유 없는 우울이나 슬픔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되고, 타자에 대한 적개심마저 사라집니다. "끝나는 것은 끝까지 보는" 냉정함으로 물질과 마음을 동시 구원하려는 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임솔아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은 하나의 시적 대상을 관찰하고, 한통속으로 밀폐된 세계를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시인의 상상력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과, 내부로 향해가는 시선들, 그리고 출구를 떠올리는 순간까지 연장됩니다. 시인은 그 출구의 언저리에서 그간 윤리와 별개로 인식되던 자폐적 태도들에 대한 판단을 요청합니다. 현실의 자폐적 태도가 바로 그 현실을 만들어간다는 인식이 쓸쓸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한인준의 『아름다운 그런데』는 기존의 문장구조를 예술적 질료로써 인식하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비문과 오문이 뒤섞인 일상 언어가 아니라, 문어체의 문장구조만을 취해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유일자인 화자의 목소리가 도래하는 독특한 시적 상황을 제시합니다. 해체함으로써 확인되는 절대성이라고 할까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삶과 언어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철저하게 예술적 "아름다움"에 근거할 때,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그런데"의 삶 역시 존재한다는 역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두호의 『사라진 입을 위한 선언』은 이 세계의 미지를 언어를 통해 모색하고, 말해진 것들을 실존의 대상으로서 승인하고자 합니다. 오직 언어를 통해서만 제시할 수 있는 상황들을 현실 속에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최초의 감각은 유실되고 증발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건조함이, 수사적 접근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삶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시인의 독특한 목소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김준현의 『흰 글씨로 쓰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각각의 시편들이 연작의 서사시를 창작하는 과정의 메타시처럼, 시와 시의 외부를 일관성 있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적인 요소들이 시의 내부에 부재하거나, 시의 외부에서 발견되는 창작과정 속에서 진실을 모색합니다. 그로부터 '쓰인 시'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고, 공감의 가능성을 표백시키지만, 그 난감한 흔적들 속에서 새로운 시적 긴장을 발생시킵니다.
안태운의 『감은 눈이 내 얼굴을』은 명백하고 단정적인 진술에서 시작해, 그것이 촉발시킨 상상력의 고리들을 만들고, 다시금 고리의 연쇄 속에서 명백하고 단정적인 진술을 확보하는 낯선 형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최초의 단정은 세계를 오독한 것이 아니라, 시인 스스로 세계로부터 이탈해 눈을 감았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최후에 단정은 눈뜬 자들이 봅지 못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고전주의적 입장에서의 '서정시인'에 가장 근접한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전소영: 저는 몇 가지 키워드로 눈여겨본 시집들을 갈무리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기억의 물질화'입니다. 새 시대가 도래하면서 세월호나 백남기 농민 사건 등에 얽힌 은닉되어 있었던 진실들이 백일하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그것은 당연히 고무적인 일입니다만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슬픔에는 시작만 있을 뿐 끝이 없으니까요.
해서 그것을 어떻게 망각의 손아귀에서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어야 한ㄷ다고 여기는데, 그 같은 맥락에서 신철규 시인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용목 시인의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서효인 시인의 『여수』, 문성해 시인의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를 떠올렸어요.
앞의 두 시인의 시집은 (신철규 시인이 어딘가에서 말하기도 했듯) '눈물의 증언'이죠. '슬픔 받아 적기'라고 해야 될까요. 고통이든 아픔이든 그것을 섣불리 말해버리면 본질이 휘발될 수도 있다는 듯, 두 시인은 우리 사회 도처에서 몇 년간 흘러나온 눈물을 '고스란히' 담기 위해 그것과 등가이면서 그것을 우회하는 이미지와 비유로 시집을 채워두었어요. 타자의 슬픔을 우리가 알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 공명할 수 있도록. 신철규 시인의 섬세한 비유와 신용목 시인의 탁월한 이미지에 우리의 기억이 아파졌다면 그것으로 시집의 가치는 충분치 않을까 싶어요.
뒤의 두 시인은 각각 장소와 물질을 통해 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데요, 서효인 시인 시집은 잘 알려진 지역들을 시에 끌어들이고 특정한 기억을 입혀 추상적인 공간을 구체적인 장소로 만드는 '기억의 의례'를 행하고 있어요. 장소는 기억을 붙잡아두는 가장 본질적인 수단이기도 하니까요. 문성해 시인의 시집에서는 그것이 '밥'인데, 생활을 대유하는 물질들에 삶의 서글픈 기억들이 가장 잘 접어 넣어진다는 전제가 '밥'의 시로 발설되었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키워드는 '첫 시집'입니다. 20권이 넘는 좋은 첫 시집들이 있었는데 지면 관계로 세 권만 추렸어요. 허은실 시인의 『나는 잠깐 설웁다』, 강지혜 시인의 『내가 훔친 기적』, 장수진 시인의 『사랑은 우르르 꿀꿀』입니다. 작년 말 그리고 올해 첫 시집을 낸 이 시인들은 저와 비슷한 시기, 그러니까 2010년대 초반에 데뷔를 해서 활동을 했던 분들이죠. 제겐 모종의 동류의식을 느끼게 하는 분들이에요.
어느덧 물녘에 이른 2010년대를 돌아보면 유동하는 공포, 불안, 슬픔 같은 키워드로 귀결될 수 있는 시간들이었죠.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이 내거티브한 속성의 감정들이 덫을 놓고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 때 시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집들을 읽었어요.
강지혜 시인의 시집은 한마디로 하자면 '비명의 형식' 같아요. 극대화 된 불안과 마주한 삶이 순간 저마다가 지를 법한 비명이요. 그런데 그것은 도망칠 때 필요한 단말마의 신음이 아니라 불안에 맞서기 위해 내지르는 어떤 고함 같은 것이죠. 시대가 지닌 불안의 인과율을 뜯어보고, 불안을 마주한 사람들의 교집합을 발견하고, 곁에서 똑같이 비명 지르고 있을 누군가의 얼굴을 발견하게 하는 고함. 비명을 닮은 화두와 형식으로 시인이 시를 지켜왔다고 생각했어요.
허은실 시인 의 시집은 독자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 비결이 시집이 주는 '온당한 위로'에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잠깐 설웁다'고 했는데, 이 문장의 여백을 좀 무람없이 채우면 '영원히 슬픈 것이 삶이지만 우리가 잠깐 설웁길 바란다."는 말이 될 것 같아요. 그것이 시로 쓰인 방식을 뜯어보자면 일단은 화자가 마음에 오래 고여 둔 슬픔으로 타인이 지닌 슬픔의 기척을 발견하고 사위의 존재와 슬픔 안에 같이 서고자 하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재현의 방식, 조심스럽고 섬세한 언어를 발견하는 것이 시인의 첫 목표라고 짐작해보았어요.
장수진 시인의 시집의 경우 시 쓰고 연기도 하는 시인의 이력이 독특해서 접하게 되었는데 과연 이채로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 시인 또한 화자가 고통이나 공포와 맞닥뜨린 상황 내지 순간에 주안점을 두고 시를 썼는데 그것을 정형화 되지 않은 말, 리듬, 감각을 통해 묘파한 것이 흥미로웠어요. 말하자면 시의 화자가 즉흥극을 시작한 배우 같았죠. 우리가 어떤 극단적인 감정과 마주할 때 내뱉는 것이라면 무규칙의 언어와 리듬 안에 있으니 그것을 미메시스하는 시란 이래야 한다, 말하듯이.
마지막으로 저에게 '예외적'이랄까, 파격에 대해 생각하게 한 시집들을 언급해볼게요. 박상순 시인의 『슬픈 감자 200그램』, 정숙자 시인의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김상혁 시인의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김이듬 시인의 『표류하는 흑발』입니다.
박상순 시인의 시집은 출간 될 때마다 궁금하긴 하지만 특히 최근에 '시의 리듬'이라는 화두가 많이 운위되어서인지 더 눈길이 갔어요. 리듬 없는 시, 리듬을 읽어버린 시들을 향한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즈음 '독보적인 리듬'과 미학의 상관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정숙자 시인의 시집은 언어와 언어, 이미지와 이미지가 연결되는 낯설되 흥미로운 방식 때문에 끝까지 정독했어요. 이즈음 시와 관련된 화제 중 하나가 또 '난해시'인데 대개는 단어나 이미지가 난반사 되면서 의미가 파편화되는 경향을 두고 이야기가 되죠. 그런데 이 시집 속 행들은 일관된 포에지를 향한 이질적인 경로에 놓여 있는 행자들같이 좀 변별되게 느껴졌어요.
김상혁 시인의 시집은 표제로 내세워진 '이야기'가 가장 먼저 주의를 끌었는데, 서정 장르인 시를 '서사 나르는 수단' 삼는 일이 재미있는 아이러니로 느껴졌어요. 겉과 속이 달라질 때, 예컨대 포장과 내용이 이질적인 선물처럼 서정 장르을 표방하며 서사적 내용을 담아냄으로써만 거둘 수 있는 어떤 새로운 효과들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김이듬 시인의 시집 이야기로 끝맺음을 해야겠네요. 이 시집은 모토가 아주 선명해요. 시집 소개에도 명시되어 있던데 '공동체'에 대해 되묻는 것이죠. 다른 자리에서 시인이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잠식했던 참혹한 갈등 때문에 두문불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고뇌의 결과물이 왜곡된 공동체에 칼날 겨누기라는 정공법이었다는 것이 너무 반가웠죠. 새로운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 역시 우리가 지금부터 내내 보관해야 할 소중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김안: 김하늘 시인의 『샴토마토』는 들끓는 시집이었어요. 여기 계신 전소영 선생님이 해설에서 잘 짚어주셨는데, 저는 김하늘 시인이 가지고 있는 들끓는 에너지가 좋았어요. 제목부터 해서 시집 전체적으로 '붉음'이 두드러졌는데, 우리가 '붉음'이라고 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와 감정들이 시적 언어의 열도와 함께 운동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단순해 보일런지 모르지만, 다음 시집-다른 변화들을 기다리게 하는 기대감을 줬어요. 김학중 시인의 『창세』는 성과 속처럼 김하늘 시인의 『샴토마토』와 반대 지점에서 맞닿아 있어요. 음악 용어 중에 순차와 도약이 있는데, 순차가 차근차근 선율을 만든다면, 도약은 음계를 멀리 놓으면서 선율을 만들죠. 『샴토마토』가 도약이라면, 그래서 거칠고 힘이 있게 느껴진다면,『창세』는 순차를 이용해서 도리어 거대한 스케일을 그려나가고 있어요. 두 시집 다 시적 에너지가 충만한데, 도약은 이미 그 형식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순차를 이용했을 때는 에너지의 밀도를 높일 수 있죠. 이 밀도를 이용해서 사뭇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의 시원, 종교를 풀어냈어요. 『창세』가 오랫동안 매만져지며 읽히는 시집인 까닭이 여기 있는 것 같아요. 즉, 존재의 시원 등 형이상학적 세계를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 김학중 시인이 부리는 시적 언어의 밀도 때문이라는 것이죠. 신명옥 시인의 『해저 스크린』도 종교적 색채가 드리워진 시집이에요. "나 없고 영원 없고 순간 있는 날"(「시인의 말」) 에서 인지할 수 있듯, 『창세』가 기독교의 세계라면 『해저 스크린』은 우파니샤드의 세계죠. 특히나 이 시집에서 주목하는 것은 어떤 '순간'이에요. 순간이라는 경계에 대해서, 순간이라는 깊음, 그 깊음이 품고 있는 어두움에 대해서 사유해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을 형이상학적으로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의 접점들을 통해서 획득해 나가는 미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첫 시집으로 최지인 시인의 『나는 벽에 붙어 잤다』를 주목했어요. 『해저 스크린』이 생활과의 접점을 통해 종교철학적 사유를 플어냈다면, 『나는 벽에 붙어 잤다』는 이 접점을 통하여 우리네 사회상과 일상을 지배하는 힘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는 벽에 붙어 잤다』에서 그려지는 젊음은 내몰려진 젊음이에요. 직접적으로 현실을 시 안으로 가지고 오면서도, 그것을 매만지는,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언어의 자세를 견지해 나가고 있어요. 이 접점을 찾는 일은 쉬운 게 아니어서, 자칫 어디론가 기울기 마련인데 묵묵하게 나아가고 있어요. 최지인 시인의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의 자세 뒤편에 있는 언어적 자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설야 시인의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는 무거운 시집입니다. 이 시집은 앞서 이야기한 『나는 벽에 붙어 잤다』와 같이 우리네 궁핍한 현실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최지인 시인의 시집보다 이설야 시인의 시집이 삶이라는 진창 속에 더 깊숙하게 박혀 있는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전자가 시인이 바라보는 현재에 보다 더 맞닿아 있고자 하고, 후자가 과거의 기억들에 눈 돌리지 않고 그것을 고통스레 응시하고 있는 까닭일 겁니다. 응시의 시점은 현재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리고 했네』는 삶의 비루한 민낯을 차분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데, 저는 이 '차분함' 속에 리얼리즘 시의 새로운 가능성의 장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함태숙 시인의 『새들은 창천에서 죽다』도 차분함이 돋보이는 시집입니다. 등단 15년 만에 내놓은 첫 시집인데,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영혼을 위무하듯한 어조를 지니고 있어요. 해설에서 이를 '쓸쓸한 역동성'이라고 하는데, 이 시집을 영혼의 서書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이혜순 시인의 『곤줄박이 수사일지』는 시어를 다루는 솜씨가 연금술이라 할 만큼 능수능란한 빼어난 시집입니다. 읽는 동안 이 시인은 어떠한 소재를 가지고도 시어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는 시인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다음 시집이 더욱 기대됩니다.
송종찬 시인의 『첫눈은 혁명처럼』은 제목처럼 '눈'으로 가득합니다. 오랜 기간 그 풍경들 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표현과 이미지들이 빛나게 박혀 있습니다. 「시인의 말」에서 "대륙에 살다 갇혀 살다 보니 시가 짧아졌다/ 어차피 모두 채울 수 없는 공간이었다"라고 했는데, 하얀 종이가 눈으로 뒤덮인 설경처럼 보일 만큼 이미지와 풍경의 빛나는 화음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동백 시인의 『대구선』은 늙어버린 혁명가의 노래입니다. 『첫눈은 혁명처럼』이 러시아와 그 혁명이란 상징 속에서 생동한다면, 『대구선』은 이 작은 반도에 갇힌, 실패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단순히 낭만성으로 떨어지지가 않는데, 이는 이 모습이 혁명가나 프로메테우스, 시시포스 등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의 삶으로까지 보이도록 은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상호 시인의 『우리의 죄는 야옹』은 여전히 고요하고도 깊습니다. 하지만 그 전작들보다 시인의 시선이 생활과 일상의 방향으로 내려와 있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시인의 자리도 생활과 그것과 둘러싸인 공간과 인연 속으로 더 내려와 있었습니다. 다음의 작업들이 기대되는 것은 이 자리에서 보다 다양한 시도들, 변화들이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박성우 시인의 『웃는 연습』또한 일상으로부터 빛나는 착상들을 길어와 특유의 따스함과 잘 벼려 낸 시집입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시골의 풍경을 이야기하는 시는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거든요. 그런데 박성우 시인의 시는 편하게 읽히면서도 다시 펼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해설에서 스며듦에 대해서 말했던데, 그간 제가 느껴온 박성우 시인의 매력이 바로 이 스며듦이더라고요. 배한봉 시인의 『주남지의 새들』은 오랜 시간 만들어온 생태시의 시세계의 결산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모범적인 서정시의 언어 안에서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 접점으로 인해 독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무의식 속에 생태적 사유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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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2017-12월호 <특별좌담/ 2017 올해의 시를 말한다>에서
* 김안/ 시인, 1977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시집『오빠생각』『미제레레』, 제5회 김구용문학상 수상
* 기혁/ 시인, 문학평론가, 1979년 경남 진주 출생, 2010년 『시인세계』로 시 부문 · 2013년 『세계일보』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박수』, 제3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 전소영/ 문학평론가, 2011년 『문학사상』으로 평론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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