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정숙자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찰학적 인식과 초월적 열망의 시 : 박수빈

검지 정숙자 2017. 12. 11. 00:46

 

<열린시학_ 시집 리뷰>

 

 

    철학적 인식과 초월적 열망의 시

     -정숙자,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파란, 2017)

 

     박수빈/ 시인, 문학평론가

 

 

  신비평가 중의 한 사람인 랜섬은 시에 대하여 특수한 가치를 지닌 특수한 담화형식으로 해명한다. 동시에 시인이 다루는 제재의 유형에 따라 사물을 제재로 하는 시와 관념을 제재로 하는 시로 구별한다. 이에 의거할 때 정숙자 시인은 후자인 관념을 풀어내는 시를 전반적으로 쓰고 있다.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고독, 슬픔, 허무, 진리, 사랑, 죽음 등등의 철학적인 명제를 다루는 만큼 형이상학적이고 고결한 세계에 대한 시인의 정념이 나타난다. 이러한 지향은 예전의 시집들에서도 꾸준하였던 바, 이번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 와서는 죽음에 대한 사유가 더 깊이 있게 와 닿는 특징이 있다. 죽음은 존재론적 불안과 두려움을 안기는 절대적 타자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기능하고 있어 그 존재론적 의미를 심사숙고하게 된다.

 

 

  나는 이미 유골이다. 나는 이미 골백번도 더 유골이다. 골백번도 더 자살

했고 골백번도 더 타살됐고 그때마다 조금씩 더 새롭게 어리석게 새롭게 어

리석게 눈떴다.

 

  파도야, 보이느냐?

  파도야, 보이느냐?

 

  나는 항상 유골이다. 살았어도 죽었어도 떠도는 유골이다. 나는 골백번도

더 죽었고 골백번도 더 눈뜰 수밖에 없었던 유골이다. 나는 늘 어리석어서 죽

었고, 어리석은 줄 몰랐다가 죽었고, 어리석어서 살아났다. 더 죽을 이유도

없는데 죽었고 더 살 필요도 없는데 살았다. 

 

  유골에게 걸칠 거라곤 바람뿐

  유골에겐 바람만이 배부를 뿐

 

  그래도 나는 저놈의 태양을 사랑하노라. 저놈의 태양 말고 무엇을 또 사랑

할 수 있단 말이냐. 파도야, 그리고 너를 사랑하노라. 파도야! 파도야! 함께할

밖에 없노라.

   -「몽돌」전문

 

 

  정숙자 시인에게 죽음은 강한 재생의 의지로 나타난다. 도입부에서 “나는 항상 유골이다”로 시작하며 “나는 골백번도 더 죽었”으나 “골백번도 더 눈뜰 수밖에 없”으니 이 반복적 죽음이 눈뜨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서 파악이 가능하다. 죽음은 유기체가 무기체로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시인의 인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기체는 다시 유기체로 전환되는 면을 고려하면 죽었으나 끝이 아니며 다시 생성의 원리가 된다. “나는 늘 어리석어서 죽었”다는 자기 성찰을 통해 “어리석어서 살아났다”는 깨침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몽돌이 파도에 의해 부서지고 쪼개지며 닳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피학적인 이미지가 느껴진다. 이 피학성은 수동적이지 않고 통찰을 낳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처 입은 몽돌은 학대와 모멸의 입장이지만 이를 수련의 과정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 얼마나 견인주의적인 자세인가. 아픈 과정에서 주체 자신의 정신적 존엄성을 얻고 있으니 희열감이 동반된다고 할 수 있고 이는 얼핏 보기에 모순되어 보이지만 의미론적으로 접근해보면 지고한 염결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정숙자의 시에서 죽음은 이렇게 살아서 곁에 있는 것 같고 피학적인 자세를 동반한다. 어쩌다 이런 자세를 취하게 되었을까. 시인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들을 감내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을 지향하는 열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고투가 상처를 받게 되면 허무에 직면하게 될지라도 거듭 성찰하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아이러니의 맥락을 조금 헤아릴 수 있겠다. 이렇듯 진리와 형이상학적인 세계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인고의 세월과 사유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혜일 것이다.

  절대적 진리란 과연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시인은 사물의 절대적 성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이 상대적이며 가치관과 현실 또한 상이하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다 보면 도덕이라든가 진리라거나 규범 등에 의해 재단되었던 현실 세계의 오류와 갈등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허무해지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주체적으로 살려는 의지를 보인다. 시집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다음의 「살아남은 니체들」을 보자.

 

 

  그들, 발자국은 뜨겁다

  그들이 그런 발자국을 만든 게 아니라

  그들에게 그런 불/길이 맡겨졌던 것이다

 

  오른발이 타버리기 전

  왼발을 내딛고

  왼발 내딛는 사이

  오른발을 식혀야 했다

 

  그들에게 휴식이라곤 주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도움이 될 수도 없었다

  태어나기 이전에 벌써

  그런 불/길이 채워졌기에!

 

  삶이란 견딤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목록은 자신이 택하거나 설정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었으므로 왼발과 오른발에 (끊임없이) 달빛과

모래를 끼얹을 뿐이었다.

 

  우기雨期에조차 불/길은 지지 않았다. 혹자는 스스로, 혹자는 느긋이 죽

음에 주검을 납부했다고, 머나먼 묘비명을 읽는 자들이 뒤늦은 꽃을

바치며대신 울었다. 

 

  늘 생각해야 했고

  생각에서 벗어나야 했던 그들

  피해도, 피하려 해도, 어쩌지 못한 불꽃들

  결코 퇴화될 수 없는 독백들

  물결치는 산맥들

 

  강물을 거스르는 서고(書庫)에서, 이제 막 광기에 진입한 니체들의 술잔

속에서 마침내 도달해야 할 불/길, 속에서달아나도, 달아나도 쫓아

오는 세상 밖 숲속에서.

   -「살아남은 니체들」전문

 

 

  “삶이란 견딤일 뿐이었다”는 수동적인 자세가 느껴지는 표현이지만 이 시의 뒷부분에 가면 “강물을 거스르는 서고書庫”가 되려고 하면서 적극성을 보인다. 이를 통해 시인의 자세는 단순히 수동적인 견딤이나 허무주의가 아니고 주어진 삶으로써 운명을 갱신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하겠다. 살다 보면 제 자신이 기울이는 노력들이 좌절로 점철되어 인생이 무상하고 삶이 회의가 들어 허무하더라도 그 삶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는 면에서 마냥 허무하지 않고 견결성을 지니고 있다.

  이 시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삶은 주변상황에 따라 “목록”이 바뀌곤 한다. “목록은 자신이 택하거나 설정한 것”이 아닌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주체의 무능과 수동성이 빚는 무의미에서 진일보하여 제 스스로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원천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제 막 광기에 진입한 니체들의 술잔 속”과 “결코 퇴화될 수 없는 독백들/물결치는 산맥들”이라는 표현이 시인을 포함하는 예술가들의 새로운 견해와 시도로 읽히며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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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2017-겨울호 <열린시학 시집 리뷰 / 박수빈 시인의 신간 시집 읽기>에서 

  * 박수빈/ 2004년 시집『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시작,『열린시학』으로 평론 등단, 시집『청동울음』, 평론집『스프링 시학』『다양성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