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정숙자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프리즈, 플리즈 : 윤은영

검지 정숙자 2017. 12. 2. 13:56

 

 

   『미네르바』2017-겨울호

  [시집 속의 시 읽기]/ 윤은영(시인) 

 

   모레의 큐브

 

    정숙자

 

 

  하루하루가 사각으로 이어진다

  모서리에 가끔 햇빛이 고이기도 한다

 

  하루하루는 내 몸에 붙어 있지만 정작 그 하루하루의 색

깔을 누가 돌려 맞추는지는 확실치 않다. 뚜두둑! 뼈들이

틀어지면서 색깔이 어긋난다. 허어, 내 하루하루가 내 하

루하루가 아니란 말인가?

 

  삶은 습관적이야

  아닌가? ‘관습적인 삶’이라고 말해야 되나

  삶-습-관

  습-관-삶

  관-삶-습

  아무리 돌려도 숨은 패턴이 바뀌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리 됐을까?

 

  멀리서 볼 때만 수평이다. 수평을 잡기 위해 바다는 몇

십억 년 흔들렸지만 오늘도 여전히 밀리고 만다. 혼자여

서 깊고, 깊어서 넓고, 넓어서 삐걱대는 그 큰 수심을 혹

는 푸르른 큐브라 한다.

 

  머리카락 한 올도 주사위 한 칸

  파랗다 노랗다 검붉어진다

 

  돌아간 내 오늘내일은 어디서 꽃다워지나?

  삶-삶-삶|3-3-3 온전해지나?

    -전문-

 

  프리즈, 플리즈 _ 윤은영(시인)

  시인이 큐브를 돌리며 나를 불렀다. ‘얘야, 같이 놀자’ 그러는 시인의 가방 속에 철학서가 잔뜩 들어있으면서도 어깨는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인다. 나는 그만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이라는 간판을 단 건물로 홀연히 빨려 들어갔다. 시 두 편의 제목을 조사 없이 병치하여 만든 괴상한 시집이었다. 과연 조사가 없는 그 틈이 화이트홀이었을까. 겨우 탈출한 나는 지금도 알딸딸하기만 하다.

  116쪽에 이르자 한참을 방방 뛰놀던 나는 그만 지쳐서 시인에게 쿠키를 구워 달라고 하고 책상에 있던 큐브에 손을 댔다. 그러자 주방으로부터 들려오는 시인의 목소리. “그거 절대 못 맞출 걸!” 오기가 생겨 앉은 자리에서 갖은 용을 다 썼으나, 끝줄에서 단 하나의 색이 말썽이었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말았고 다른 색으로 토라진 큐브의 한 조각처럼 속상해져서 주저앉았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어른이 되는 것, 인생의 비의를 알아가는 것, 모든 ‘포기’에 대하여 말이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내게 시인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초코쿠키를 건네준다. 이것은 일종의 위로다. 시인은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잘 익은 초코쿠키는 새까맣다. 더욱이 니체, 칸트, 들뢰즈, 싯다르타, 비트겐슈타인이 토핑 되어 있으니 더욱 맛있다. 이때 시인은 사색으로 빚어낸 시편들을 가만히 읊어주기 시작했고, 나는 손에 쿠키를 든 채로 이내 잠이 들고 만다. 잠에서 깨어나면 늙음과 시간이 가진 공존의 원리와 타성에 젖은 그간의 생애에 대해 가졌던 팽팽했던 반감의 줄 위에서 내려올 수 있을 것 같다. 「절망 추월하기」위해 몸부림쳤던 옛날의 얼굴을 떼어버리고 “좀 더 완만한 기억의 탄생을 수용하”(「지형도」)고자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을 것만 같다.

  시집에서 한 편을 골라 소개하는 이번 작업에 대해 ‘고되다’고 칭얼대고 싶다. 어떤 시편이든 다 좋아서 시집을 읽는 내내 심해어가 된 것처럼 내밀한 언어의 바닷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달콤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물론 내일도 모레도 마찬가지모두들 “내 오늘내일은 어디서 꽃다워지나?” 울먹거리며 출근길에 오르겠지만 대출금의 이자가 사그라들어 생활이 “온전해지”는 날이 올 때까지 큐브 위의 삶을 기꺼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위안을 주는

듯한 화법이 내내 나를 흔들었기 때문에 이 시를 택했다. 시든 직업이든 의술이든(이국종 교수의 말처럼) 궁극은 진정성에 있지 않는가 말이다.

  내 비록 큐브는 던졌으나 당분간 (공자처럼) 요요夭夭하고 싶다. 물론 이것을 가지고 놀 때 시인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얼굴이 비로소 화안해진다.

 

   ---------------

  * 『미네르바』 2017-겨울호 <시집 속의 시 읽기 / 감상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