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문》2017-11-29 (월) 전자신문 16면
[아침시산책]/ 정겸(시인)
악마의 바늘
정숙자
총알이 나를 뚫고 지나가네
내 몸에선 피 한 방울 나지 않네
어떤 멍울도 흉터도 없어 의사를 찾아갈 필요도 없네
나는 훨씬 먼 곳에 와 있네
총알은 너무 먼 곳에서 날아왔기에 닳아 버린 것이라네
총알이란 예전엔 흉기였지만 이제 한갓 기호일 뿐이라네
얼마나 힘들여 조준했을 것인가
그러나 나는 영 총알하고는 셈이 맞지 않는 속에 와 있네
이 총알이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도 없네
그렇지만 총알인 것만은 확실하네
옛날 옛날에 봤던 기억이 있네
-정숙자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中에서
■ 이 시를 읽다 보면 아방가르드의 색채가 짙게 채색되어 있는 느낌이다. 아울러 물체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분석하는 힘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총알이 나를 관통했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고 흉터가 없다니 이는 어쩌면 허무주의가 빚어낸 산물인 것이다. 총알이 너무 먼 곳에서 날아왔기 때문에 가는 바늘처럼 닳아 버려 느낌표 같은 기호로 변했다면 흉기는 아니지만 악마의 바늘이 되어 먼 옛날 상처 입은 기억을 반추하게 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정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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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신문/ 2017년 11월 20일 (월) [아침시산책]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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