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시뮬라크르 언어와 디오니소스의 사도
-정숙자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파란, 2017)
권성훈/ 문학평론가
시라는 텍스트는 주체와 대상이 겹쳐져 온다. 최소한 정숙자의 이번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이 구성하고 있는 시뮬라크르 언어가 그것을 성찰하게 해준다. 그녀의 시는 존재와 존재의 겹쳐짐에 대한 개입과 비개입적인 텍스트의 충돌과 발생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럴수록 모든 실제와 현상은 순환하는 구도 속에서 어떠한 사유의 접점을 형성하며, 텍스트 액정에 존재하는 연원의 패턴을 그려내는 데 성공하는 듯 보인다. 그녀가 감지하고 있는 ‘액정 텍스트’ 속 ‘텍스트는 텍스트를 떠나서 텍스트로 돌아오는 것'(「순환과 연쇄」)이기에 텍스트 없이는 텍스트 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선험적으로 텍스트가 부재한 텍스트 시는 그 자체로는 폭발적인 사유를 가지지 못하지만 텍스트가 다시 복제되어 텍스트로서 '타자 텍스트화' 되었을 때 비로소 새로움을 획득할 수 있다는, 시뮬라크르 언어로서의 근간을 보여준다.
총4부로 된 각각 다른 형식의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이 시집의 공통점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매일 새로 쓰고 고쳐 써야 하는 시인의 운명과 같이 재생된다. 이것에의 사유를 우리는 니체의 디오니소스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녀의 시편들을 소급해서 말하자면 아담의 갈빗살에 새겨진 ‘신의 언어’를 벗겨내는, 이른바 디오니소스적 상상력으로 호환된다. 그녀는 예측 (불)가능한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같이 대상과 대상이 만나는 접점 혹은 어긋난 지점에서 발생하는 신호에 관심을 기울인다. 시인의 부호는 전체라는 세계 속에 부분적으로 관계한 것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만큼만 표시되는 것이다. 거기서 시는 “두 공간이 겹쳐지면/ 사랑,/ 잘못 겹쳐질 경우/ 몇 계절 건너 뛴 한파가 낀다"(「인칭 공간」)는 점에서 텍스트와 텍스트의 결합을 통해 얻어진 결정체의 기록이다. 이 텍스트들의 특이점은 “공간과 공간들, 한 칸 한 칸 그 모두가/ 독특한 색과 소리와 내면을 지닌” 그곳은 시인의 무의식에 귀속된 “유일 공간으로서/ 무한 공간의 한 지점에 위치”한 그만큼의 절대공간에서 파생된다. 그만큼의 시 라는 텍스트는 그만큼의 텍스트의 시공간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시는 상상력을 통한 또 다른 텍스트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언어적 복합물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정숙자의 시적 공간을 좇아가면 재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존재의 순환성이 목격된다. 이 순환성은 자연 그대로의 무목적 의지와 같이 고통을 방치하지 않고 감내하는 인고로 나아간다. 이것은 기존 텍스트가 또 현존 텍스트가 되는 방식을 취하는데, 디오니소스의 세계를 소환하여 환유적인 매듭으로 풀고 있다. 그 세계(정신) 혹은 그러한 세계를 살고 있는 니체 같은 니체적 존재가 살아남기 위해 세상이라는 불길에서 “오른발이 타버리기 전/ 왼발을 내딛고/ 왼발을 내딛는 사이/ 오른발을 식혀야 했다”(「살아남은 니체들」) 흔히 '죽음에 주검을 납부’하는 것은 자연발생적인 추구라고 한다면 시인이 말하는 니체적인 죽음은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한 발, 한 발 극복하는 것이다. 오른발이 불길에 완전히 닿아 소멸되기 전에 왼발을 내딛는 사이 오른발을 식히듯이, 왼발 또한 불길에 소멸되기 전에 오른발을 이용하여 왼발을 식히는 방식은 소멸되지 않고 재생을 거듭하면서 앞으로 향하는 니체들의 생존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성경의 예수가 바다 위를 걸어가 중력의 상식을 무중력의 믿음으로 깨트렸던 것처럼 불안과 공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전진만이 위로와 믿음이 되는 것. 그 순간 불안과 공포의 흔적은 사라지고 위무와 믿음만이 남게 된다. 모래사막의 낙타들이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횡단하듯이 디오니소스의 영혼을 가진 또 다른 니체들의 탄생을 잇게 한다.
여기서 니체의 등장은 세계를 거부하거나 부정해서 생겨나는 초월성 또는 타자적인 일탈성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있는 인간 내면의 충만한 영혼을 깨우는 데 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만이 신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을 수 있지만 시인은 주검과 죽음의 겹쳐짐을 통해 죽음을 소멸시키고 주검을 환생시키기도 한다. 「태양의 하트」에서 검은 새를 먹은 화자의 주체가 상실되고 그 자리에 전이된 검은 새의 날갯짓. 이제 그 중심에는 이전의 주체가 아니라 검은 새가 위치하며,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에서 대상과 주체가 온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또 다른 주체의 자리로 교환된다.
시라는 언어로 주체들의 탄생을 이러한 방식으로 윤문하고 있는 사이 배태된 것은 생성의 원리이며, 배제된 것은 소멸의 원칙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질서 위에 새롭게 쓰여진 텍스트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녀가 나타내는 생성의 원리와 소멸의 원칙이라는 아이러니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존재와 존재 간의 관계성, 즉 존재들의 집합이라고 환원할 수 있다. 알랭 바디우는 “존재의 접힘이란 다름 아닌 존재가 언어와 자기 언급을 통해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다. 접힘이란 재귀적이란 말의 다른 표현이다. 구성주의자들은 형식적 언어를 통해 존재를 접어 나가는 작업을 하여 방황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한다.”(김상일,『알랭 바디우와 철학의 새로운 시작 2』, 새물결, 2008, 682쪽) 이 근원적인 존재의 방황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언어는 그녀의 요구에 의한 호출 또는 그 무엇인가의 대리자로서의 기표이며, 이 언급은 접점과 접점 사이 접혀 있는 초월적 주체의 계시로서 전달되는 매개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수한 시간과 시간을 뚫고’ 온 시인의 시간은 시인을 통과하고 남은 잉여의 무엇이 아니라 “감각을 넘어선 그 시간의 실체”로 나아가며 급기야 “지구를 벗어난 어딘가로, 수수 광년 밖으로/ 거기 또 내가 서 있을지도 모르지”라고 자신을 메타적으로 응대한다.
이 접힘의 경계는 그녀의 시에서 “소녀야… 소녀야… 경쾌 발랄 순식간에 계단이 접힌다”(「풍크툼, 풍크툼」). 찔림의 장소와 상처의 흔적 역시 존재들의 재귀를 통해 경쾌하고 발랄한 소리로서 시선과 감각의 반전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열리고 접히는 지하철, 하늘, 바다, 거리에서도 휴대폰 액정 이미지로 반응한다. 여기서 “즉 각 즉 각 방향을 트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 “환상도 앞지르는 소년, 소녀”가 바로 디오니소스의 세계라는 점이다. 천진난만한 소년과 소녀의 세계에서는 “순간이 순간을 뺏어간다/ 순간순간이 아니라면 무엇이 과연/ 그것을 앗아갈 수 있단 말인가”(「제2 국면」). 그 순간에 순간만 감각할 수밖에 없는 순간의 견고한 힘 앞에서 순간적으로 유희할 수 있는 소년과 소년이야말로 살아남은 니체들, 차라투스트라가 아니겠는가.
흔들린다. 그 흔들림 하나가 쌓인다
흔들리지 않는다. 그 흔들리지 않음 하나가 쌓인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린다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 사이에 반복이 자리한다
-「싯다르타」부분
그녀가 집중하는 사물의 언어는 흔들림을 흔들리지 않는 사이에 포착된 존재의 시뮬라크르로 파악되며 미학적 고민으로 충당된다. 여기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는 주체가 흔들리지 않는 대상과의 일치 또는 흔들리지 않는 주체가 흔들리는 대상과의 합치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흔들림의 동화 현상을 바로 응시할 수 있는 시선은 “그 흔들림 하나가 쌓인다” “그 흔들리지 않음 하나가 쌓인다”와 같이 오랜 윤문의 형성 과정으로 비롯되며 미적 사유로 축적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정숙자 시인의 “싯다르타, 그는/ 흔들림과 어둠과 홀로를 수용한/ 누적의 용량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기 위한 흔들림을 통해 그녀의 시가 도달한 곳은 “유골에게 걸칠 거라곤 바람뿐/ 유골에겐 바람만이 배부를 뿐”(「몽돌」)이라는 접점, 유구한 사유의 사막에서 풍화되어가는 디오니소스의 계단에 바쳐진 텍스트라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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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2017-11월호 <서평>에서
* 권성훈/ 2002년『문학과의식』시, 2013년『작가세계』평론 등단. 시집『유씨 목공소』등, 저서『시치료의 이론과 실제』『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정신분석 시인의 얼굴』, 편저『이렇게 읽었다-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등, 현재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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