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30
정숙자
참새 파이팅/ 산책로에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새들이 있다는 건
내 몸에서도 깃털 한둘 솟아나는 기분이다. 나는 그들을 대명사로 대할
뿐이지만 그들은 나를 고유명사로 기억한다. 한주먹의 모이가 그런 끈
이었던가.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싶어 눈을 들면 비둘기
들의 날갯짓이 내 주위에 떠 있다.
나는 그렇게 부채질을 받으며 이삼 미터쯤 걸어가 한주먹의 낟알을
뿌려준다. 일제히 내려앉아 끄덕끄덕 먹기에 열중하는 그들. 굿바이 겸
커브 지점에서 잠깐 돌아보노라면, 으레 끼어들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
는 참새 몇 마리가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다. 몸집으로 보더라도 비둘기
VS 참새는 상대역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며칠 전부터 참새 서넛이 과감히 진입. 날쌘 몸놀림으로 몇
알 책기는 게 눈에 띈다. 그간 얼마나 부러웠을까. 얼마나 골똘히 담력을
키웠을까. 환경에 적응하느라 계란보다도 작아진 몸이건만, 그들 또한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큰 짐이겠는가. 내 곁에 아직 그들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기특한지! 대견한지!
길에서 길로
서로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한순간 매순간 돌아와 웃는 우리는 숨은 논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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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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