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27
정숙자
숙명// 날아갔길 바라지만 어제 그 애까치가 그 자리에 죽어 있다면 묻
어줘야겠지. 바로 흙을 뿌려선 안 되겠지. 염殮을 위한 신문지 한 장, 고
무장갑, 호미는? 손목에 걸고 가지 뭐.
어제도 오늘도
같은 길
같은 시간
비둘기들과 보리쌀 한 깍쟁이 나누는 일도
달라진 거라곤 없지, 만
느릿느릿… 넘기는 책장마다
애까치의 잔영이 모서리를 채운다
결국, 분홍색 비닐봉투와 애까치가 따로따로 누워 식은… 광경이 나타난
다
책은 접어 가방에 넣고, 고무장갑을 끼고, 애까치를 염한다. ‘이렇게 돌
려보내 미안합니다.’ 침묵으로 평장平葬을 하고, 어제 함께했던 모녀가
알아보게끔 나뭇가지에 메모를 걸고,
다시 걸으며 책을 읽다가
보이지도 않는 무덤자리 돌아보다가
차츰 어두워지는 하늘 밑
손목에 걸린 호미와 나
나, 굽은 목에 대하여 하염없이 얘기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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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학』 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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