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이슬 프로젝트-27

검지 정숙자 2017. 9. 25. 18:25

 

 

    이슬 프로젝트-27

 

    정숙자

 

 

 

  숙명// 날아갔길 바라지만 어제 그 애까치가 그 자리에 죽어 있다면 묻

어줘야겠지. 바로 흙을 뿌려선 안 되겠지. 염을 위한 신문지 한 장, 고

무장갑, 호미는? 손목에 걸고 가지 뭐.

 

  어제도 오늘도

  같은 길

  같은 시간

  비둘기들과 보리쌀 한 깍쟁이 나누는 일도

 

  달라진 거라곤 없지, 만

 

  느릿느릿 넘기는 책장마다

  애까치의 잔영이 모서리를 채운다

 

 

  결국, 분홍색 비닐봉투와 애까치가 따로따로 누워 식은 광경이 나타난

 

  책은 접어 가방에 넣고, 고무장갑을 끼고, 애까치를 염한다. ‘이렇게 돌

려보내 미안합니다.’ 침묵으로 평장平葬을 하고, 어제 함께했던 모녀가

알아보게끔 나뭇가지에 메모를 걸고,

 

  다시 걸으며 책을 읽다가

  보이지도 않는 무덤자리 돌아보다가

  차츰 어두워지는 하늘 밑

  손목에 걸린 호미와 나

  나, 굽은 목에 대하여 하염없이 얘기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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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 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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