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문》2017-09-11 (월) 전자신문 16면
[아침시산책]/ 이정원(시인)
나는 죽음을 맛보았다네
-교통사고 트랙
정숙자
죽음은 맛볼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덥석 먹어야 하는 것이었네
죽음의 맛을 반추하는 건
히히히히힘든 일이네
그 순간의 기억과 허무에 싸여
무얼 계획하고 싶지도 않네
느닷없는 교통사고는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예예예예예고도 없이 언제든 다시
내 목을 끊어버릴 수가 있다네
지금도 뉴스를 틀면
‘죽었다’는 소식이 판치지 않나
나는 죽음 곁에 살고 있었네
나는 죽음을 방관했지만
죽음은 죽 나를 지켜봤던 것이네
게다가 날 놀리기까지 했던 것이네
-전문-
■ 죽음! 이보다 심각한 철학적 명제가 있을까요. 삶과 동전의 양면이면서도 우리는 평소 죽음에 대하여 한없이 무지한 게 아닐까요. 거기에는 은연중 죽음에 대한 공포나 거부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죽음이 어떤 규칙이나 예고 없이 흡사 도둑처럼 덮쳐왔을 때 비로소 죽음에 대한 성찰은 깊어지나 봅니다. 아마 그런 경우는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으로 겪는 상실감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겠지요. 갑작스런 교통사고! 그 느닷없음으로 화자는 얼마나 공포스러웠으면 '죽음은 맛볼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덥석 먹어야' 한다고, '죽음의 맛을 반추하는 건/ 히히히히힘든 일' 이라고 했겠습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웠으면 '예예예예예고도 없이' 왔다고 했겠습니까. 이런 비이성적인 죽음은 오직 자신만의 체험이라야 온전히 그 실체를 마주할 수 있으려니 나의 왈가왈부도 얼마나 피상적인 말놀음일는지요./ 이정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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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신문/ 2017년 9월 11일 (월) [아침시산책]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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