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뉴스 통신사 - NSP통신》2017-07-18 (화)
[詩단상]/ 이복현(기자)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시와 만난 사유”
(서울〓NSP통신) 이복현 기자〓파란에서 정숙자의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정숙자 시인의 사고의 근간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니체와 칸트적 사고가 시와 만남으로써 갖는 파괴적이고 생경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마치 시인 자신이 ‘유골’(몽돌)이 되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이미지는 기존 시들과는 이질적이고 도발적이다.
“나는 이미 유골이다. 나는 이미 골백번도 더 유골이다. 골백번도 더 자살했고 골백번도 더 타살됐고 그때마다 조금씩 더 새롭게 어리석게 새롭게 어리석게 눈떴다.”
시인은 자신의 주검에서 ‘새롭게 어리석게 눈떴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늘 현재가 과거로 이동한다. 이때 현재는 과거와 함께 주검(유골)이 되고, 현재 즉 나 자신은 그 죽음으로 인해 ‘새롭게’ 탄생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시인은 ‘어리석게 눈떴다’고 서술한다.
그러면서 “나는 늘 어리석어서 죽었고, 어리석은 줄 몰랐다가 죽었고, 어리석어서 살아났다. 더 죽을 이유도 없는데 죽었고 더 살 필요도 없는데 살았다”고 고백한다.
즉 ‘어리석음’은 내(시적 화자)가 가지고 있는 것. 본래적인 것에 가깝다.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늘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이유를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것이다.
시인은 이처럼 언어적 상상으로 시를 이끌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시 속에 철학적 사고 체계를 숨겨놓고 있다.
국내에 많은 시들이 있지만 정숙자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읽는 것은 그래서 생경하다. ‘유골’이 된 내가 서술하다 보니 서정적 감상을 벗어나 철학적 담론을 따져 묻고 있다.
또 ‘무릎_學’의 시에서는 이렇게 자신을 고백한다.
“정작 어떤 게 죽음인지/ 환상인지/ 삶인지 한 조각도 풀지 못한 채/ 덜 자란 내 속내는 오늘도 어둠을 짓고”
자신의 삶의 근저에 ‘회의懷疑를 품고 있는 시인은 니체, 칸트, 싯다르타(붓다), 이상 등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사고를 따라가기도 하며 비틀기도 하면서 시인은 이 누추한 생과 자신을 벗어나고 또는 초월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시인의 생각만큼 초월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시인이 시간과 공간에 집착하는데, 바로 삶을 구성하는 것의 원초적 특성이 시간과 공간이기 때문이다. ’균열‘, ’현재의 행방‘. ’순환과 연쇄‘ ’모레의 큐브‘ 등은 시인의 방법론적 탐구의 특성처럼 보인다.
또 “삶이란 견딤일 뿐이었다”(살아남은 니체들)라는 독백은 니체가 말한 ‘삶은 견디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지만 시인의 관심은 유골의 이미지 특히 4부의 ‘죽음’ 앞에서 강조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인의 많은 시 중에서 ‘꽃 속의 너트’라는 작품이 시선을 끈다. 꽃의 가장 서정적인 소재에 가장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너트’의 이미지가 만나 파생되는 느낌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사실 기계적 이성을 통해 세상을 보려고 했던 19세기 철학적 사고의 방법론이 시와 만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신선하게 느껴진다.
꽃 속에 너트가 있다(면
혹자는 못 믿을지도 몰라. 하지만 꽃 속엔 분명 너트
가 있지. 그것도 아주아주 섬세하고 뜨겁고 총명한 너트
가 말이야.)
난 평생토록 꽃 속의 너트를 봐왔어(라고 말하면
혹자는 내 뇌를 의심하겠지. 하지만 나는 정신이상자가
아니고 꽃 속엔 분명 너트가 있어. 혹자는 혹 반박할까? ‘증
거를 대봐, 어서 대보라고!’ 거참 딱하구나. 그 묘한 걸
어떻게 대볼 수 있담.)
꽃 속에 너트가 없다면 아예 꽃 자체가 없었을 것(이야!
힘껏 되받을 수밖에. 암튼 꽃 속엔 꽉꽉 조일 수 있는 너
트가 파인 게 사실이야. 더더구나 너트는 알맞게 느긋이
또는 팍팍 풀 수도 있다니까.)
꽃봉오릴 봐 봐(요.
한 잎 한 잎 얼마나 단단히 조였는지. 햇살 한 올, 빗방
울 하나, 바람 한 줄기, 먼 천둥소리와 구름의 이동, 별들
의 애환까지도 다 모은 거야. 그리고 어느 날 은밀히 풀
지.)
꽃 속의 너트를 본 이후(부터
‘꽃이 피다’는 ‘꽃이 피-였다’예요. 어둠과 추위, 폭염과
물것 속에서도 정점을 빚어낸 탄력. 붉고 희고 노랗고 파
란… 피의 승화를 꽃이라 해요. ‘꽃이 피다!’ 그렇죠. 그래
요. 그렇습니다.)
그늘을 지우는 꽃(을
신들이 켜놓은 등불이라 부를까요? 꽃이 없다면 대낮
일지라도 사뭇 침침할 겁니다. 바로 지금 한 송이 너트 안
에 한 줄기 바람이 끼어드는군요. 아~ 얏~ 파도치는 황홀
이 어제 없던 태양을 예인합니다.)
-「꽃 속의 너트」전문
이 꽃 속의 너트라는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발견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꽃이 피-였다”고 말하는 것에서. 이 발견을 통해 시인은 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꽃은 어떻게 피는가?’를 말이다. 구체적인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세상의 ‘너트’들이 있어야 생명과 탄생이 비롯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닐까? 햇빛 빗방울 바람 천둥들과 같은 ‘볼트’는 바로 보이지 않는 너트들이 품어(?)줄 때 비로소 꽃이 피고 지는 만물의 이행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이 시에서 주목되는 점은 서구 이성적 풀이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만물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볼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오감에 의지하고 이를 다시 그림으로 그려줄 때 선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이 발견한 것이 꽃 속의 ‘너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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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경제뉴스 통신사 - NSP통신/ 2017년 07월 18일 (화)[詩단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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