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정숙자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꽃 속의 너트」/ 작품론 : 채상우

검지 정숙자 2017. 6. 16. 14:32

 

 

 《아시아경2017-06-16 (금) 034면 

[오후 한 詩]/ 채상우(시인)

 

 

   꽃 속의 너트

 

   정숙자 

 

 

  꽃 속에 너트가 있다(면

  혹자는 못 믿을지도 몰라, 하지만 꽃 속엔 분명 너트

가 있지. 그것도 아주아주 섬세하고 뜨겁고 총명한 너트

가 말이야.) 

 

  난 평생토록 꽃 속의 너트를 봐 왔어(라고 말하면

  혹자는 내 뇌를 의심하겠지. 하지만 나는 정신이상자가

아니고 꽃 속엔 분명 너트가 있어. 혹자는 혹 반박할까? '증

거를 대봐, 어서 대보라고! 거참 딱하구나. 그 묘한

어떻게 대볼 수 있담.)

 

  꽃 속에 너트가 없다면 아예 꽃 자체가 없었을 것(이야!

  힘껏 되받을 수밖에. 암튼 꽃 속엔 꽉꽉 조일 수 있는 너

트가 파인 게 사실이야. 더더구나 너트는 알맞게 느긋이

또는 팍팍 풀 수도 있다니까.)

 

  꽃봉오릴 봐 봐(요.

  한 잎 한 잎 얼마나 단단히 조였는지. 햇살 한 올, 빗방

울 하나, 바람 한 줄기, 먼 천둥소리와 구름의 이동, 별들

의 애환까지도 다 모은 거야. 그리고 어느 날 은밀히

지.)

 

  꽃 속의 너트를 본 이후(부터

  '꽃이 피다'는 '꽃이 피-였다'예요. 어둠과 추위, 폭염

물것 속에서도 정점을 빚어낸 탄력. 붉고 희고 노랗고 파

피의 승화를 꽃이라 해요. '꽃이 피다' 그렇죠. 그래

요. 그렇습니다.)

 

  늘을 지우는 꽃(을

  신들이 켜놓은 등불이라 부를까요? 꽃이 없다면 대낮

일지라도 사뭇 침침할 겁니다. 바로 지금 한 송이 너트

에 한 줄기 바람이 끼어드는군요. 아~ 얏~ 파도치는 황홀

이 어제 없던 태양을 예인합니다.)

  -전문- 

 

 

  ■ 꽃 속에 너트가 있다고? 정말? 재미있는 상상력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당장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증거를 대 봐, 어서 대 보라고!"  "거참 딱하구나. 그 묘한 걸 어떻게 대 볼 수 있담." 그는 아마 평생토록 모것이다. 꽃 속의 너트가 "햇살 한 올, 빗방울 하나, 바람 한 줄기, 먼 천둥소리와 구름의 이동, 별들의 애환까지도 다 모"아 꽃잎 "한 잎 한 잎"을 "얼마나 단단히 조"여 꽃봉오리를 맺었는지. "그리고 어느 날 은밀히 풀"어 꽃을 피우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자신한다. 이 시의 상상력은 그저 재기에서 문득 출현한 게 아니라 "평생토록" 꽃 한 송이가 필 때까지 무릎 꿇고 그 앞을 지킨 자의 무궁한 기도에서 발원한 것이라고. 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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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경제/ 2017년 6월 16일 (금) 034면[오후 한 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