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절름발이 바다/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7. 6. 16. 14:01

 

 

    절름발이 바다

 

     정숙자

 

 

  그는 그를 만든다. 타인은 그의 공간에 겹칠지언정 그

를 만들어 주지 못한다. 없었던 문 열리는 암호? 스스로

찾아야 한다.

 

  바다 울음 차오르는 날

 

  소년소녀들은 책을 읽는다. 책 속에는 바다가 없고 파

고드는 울음도 없다. 소년소녀들은 한동안 그렇게 책만 읽

어도 꽉 찬다.

 

  8시 반, 너무 빨리 지나간다

 

  순식간에 오후 세 시가 되면 소년소녀들에게도 비로소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는 절뚝거리며 다가온다. 발

이 젖는다.

 

  소년소녀들

  이제 책보다는 바다를

  읽어야 한다

 

  많은 물굽이를 넘어야 하고 돌아다보아야 한다. 물의

늪에 물린 것이다. 빠져나갈 길이란 없다. 발자국을 하늘

로 옮길 때까지.

 

  그가 바로 나라는

  당신이라는

  우리라는 가정은 모두 슬프다

 

  절름발이 바다 위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소년소녀들

만이 잠시 8시 반에 머문다.

   -『미래시학』2017-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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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