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신작시와 산문>
과일,
껍질도 먹지만
씨앗만은 먼 곳에
정숙자
나는 남동풍과 풀잎과 함께 자랐다. 씨 뿌리고 수확하는 길 하나
에서 열하나까지 봤을 뿐 아니라, 그 그림자까지도 담아두었다. 점
점 파래지던 논밭이며 뙤약볕에 기절하던 호박잎이며 단명할지언
정 태양을 빼닮았던 이슬방울들…, 소낙비에 혼나고서도 금세 노랫
말 터뜨리던 뒷산 뭉게구름들…,
조카님이 철 이른 수박을 사들고 왔다
누구에게 겁주려는 것인지 수박은 늘 토성만한 얼굴에 호랑이무늬.
까뭇까뭇 씨앗도 많기도 하지. 매번 귀퉁이로 밀리는 그 유전자들을
나는 또 음식쓰레기에 붓지 못하고 일반쓰레기에 털어 넣는다. 얘들
아, 난지도든 어디든 묻히거들랑 한 번은 때를 만나 살아 보거라. 분
리수거는 끝장이란다.
분쇄기에 쏟고서는 칼날을 돌려버린대
조카는 휭
차 몰고 가고
수박과 나와
세상 밖 얘기로 밤을 축낸다
아직은 목숨인 것은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만 해. 살 수 있다면 살
아야만 해. 신은 천국을 꿈꾸었지만 지옥이 열린 것 같아. 꿈이란 신
에게조차 이루기 힘든 것일까? 신도 이쯤에선 우리들을 이해하고 고
민 중일까? 우리가 우리를 먹고 먹히는 것은, 그게 다 배고픔 때문이
란 걸 접고 계실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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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애인 & 여인
외식할 때마다 남은 음식을 싸오기 시작한지도 꽤 오래되었다. 버려지는 밥이나 반찬의 공해가 날이 갈수록 심각하다는 뉴스 보도 때문이었다. 음식이 쓰레기가 된다는 것. 더욱이 공해물질이 된다는 것. 게다가 경제적 손실 또한 수십조 원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나에게는 가느단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 달라, 도와 달라’고….
나도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는 하이힐에 자그마한 핸드백을 들고 사뿐히 외출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익숙히 반찬통 여러 개가 담긴 가방을 들고 다닌다. 챙기기가 일이거니와 무겁기도 하지만 ‘공해’를 생각하면 늑장부릴 일이 아닌 까닭이다. 음식점 주인한테 싸달라고 하면 일회용 용기를 사용할 테고, 그건 더 큰 공해를 일으킬 것이기에….
며칠 전 모 대학의 특강에 초청되어 나는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저의 애인은 지구이고 벗은 책이며 종교는 시(詩)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 이어 (문학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급적 애인에게 해로운 짓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애인이 병드는 걸 원치 않습니다. 제가 죽으면, 그날이 곧 애인의 품에 깊이 안기는 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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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크에코플러스+ 『MOOK eco PLUS+』vol. 01 생태+문학
* 진행|함께하는그룹파란 / 2016.11.7. <국립생태원 출판부>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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