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시 6
정숙자
최승범 선생님께// 안부 여쭙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단 하루
도 푹 잠잔 날 없을 정도로 시간을 아끼는데도 왜 이렇게 늘 분초가
부족한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친필 서한을 받은 그때로부터 ‘원고
를 써야지!’ 별렀습니다만, 오늘에야 옷깃을 여미게 되었습니다. 이
번엔 선생님께 편지를 올리는 편이 가장 맑고 따뜻한 시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저의 당호(堂號)를 상기시켜 주셨을 때, ‘아차!’
싶었습니다. 20여 년 저쪽에 묻어둔 자신을 문득 재회했기 때문이지
요. 93년 4월에 나온 저의 세 번째 시집『이 화려한 침묵』자서(自
序)의 끝자락에도 적혀 있는 “공우림(空友林)에서”, 이 당호는 ‘벗이
없는 숲’이라는 의미로 그 무렵의 제 처지를 그대로 수용한 음영이었
습니다.
그런데 적잖은 세월을 건넌 지금도 제 추녀가 공우림이라는 점,
그 점이 저로 하여금 하 많은 반성을 들끓게 했습니다. 어떤 모순이
재주를 부리는 걸까요? 혹시 공우림은 너무나도 잘 짚은 제 운명의
집약일까요? 하지만 그 적소를 거슬러 저는 다른 공우림에 접어들었
습니다. 벗이 없는 숲이 아니라 ‘공기가 벗인 숲’을 소유/ 소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막 저녁 산책에서 돌아왔습니다. 역시 공기를 벗 삼으면서요.
공기는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저를 해치지 않습니다. 항상 마음 깊이
도와줍니다. 제가 펼쳐 들고 읽는 책 위에서 조용히 발걸음을 비춰주
며 어루만져 줍니다. 공기와 저는 암만 생각해도 피를 나눈 사이이자
한 그루의 숲입니다.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만을 빌고 빕
니다.
*『全北文學』2016. 4. 29. / 2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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