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허무를 보았으므로

검지 정숙자 2015. 12. 30. 01:54

 

 

    허무를 보았으므로

 

 

    정숙자

 

 

 

 

   하늘은,

   딱히 누구를 지목하는 것 같지도 않다

   십년 전이나 오늘이나 달라진 각도도 보이지 않는다

   텅 비었지만 새로운 점 하나 찍지도 않고

   그것이 그것인 얼룩만 뭉쳤다 푼다

 

 

   그 하늘 가장자리서

   그 하늘 바라보며 사는 우리는

   그런데 왜

   영문도 모른 채

   뒤집어지고 꺾이고 휘말리고 찔리지 않는 날 없는 것일까

 

 

   깎아지른 각오 한 줄 없이 어떻게

   남은 생 건너갈 수 있으랴

 

   내일까지만 밟히고

   아니 한 사흘만 더 짓밟히고

   강철커튼 한 벌 만들어 입어야겠다

   현관에도 입히고 지붕에도 입히고 창문에도 입히고

   심지어 침대와 천장에도 입혀두리라

   그 투명강철커튼은 (바위가 닳도록) 수비지향의 의상임을

   하늘 깊숙이 일러두리라

 

   공격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고작 강철커튼이나 구상하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결론적으로!

 

   꽃들은 참 열심히 핀다

   누구를 위해 그런 게 아닐지라도

   그들 정신들 꼭 우리를 향해 뛴 것만 같다

   요즘 부쩍 줄어든 위안과 행복을 얻어가지며

 

 

   (아, 꽃봉오리도 강철을 쥔 것이었구나)

 

   나 또한 꽃술 올리면 누군가에게 달빛이 되지 않을까?

   (저 흰 꽃들 틈에 숨은 꽃 붉은 꽃 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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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의식』2015-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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